[칼럼]'서초·용산 한 가운데 다자녀 아파트'…파격에 파격을
2년 후 합계출산율 0.5명대까지 추락 전망
여야의 저출산 대책들에도 반전의 계기 난망
주거·교육·수당·세금 등 파격에 파격 더해야
'저출산 전염병' 치료의 시간 얼마남지 않아
뿌연 페퍼포그 속에 돌멩이와 보도블럭이 날아든다. 욕설과 비명으로 뒤덮인 거리에는, 부상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하나둘 쓰러져간다. 이런 모양으로 어제는 젊은이들이 경찰과 충돌하더니 오늘은 노인들이 도로를 점거해 시위를 벌인다. 노인들은 정부가 약속한 만큼의 연금을 지급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청년들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복지비용을 축소하라고 촉구한다. 두 세대가 정면으로 맞붙을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떼 지은 사람들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그나마 도시에서의 특권이다.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사람 구경이 어렵다. 노동자가 없는 공장은 기계를 멈춰 세웠고, 손님이 없는 상점은 개점휴업이다. 소멸하는 지역에서는 인프라도 빈약할 수밖에 없다. 문을 닫은 병원 앞에서 사람들은 하릴없이 죽어간다. 화재와 범죄를 신고해도, 한달음에 달려와야 할 소방관 경찰관은 감감무소식이다.
무엇보다 국가 파산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내놓아도 내수가 받쳐주지 않으니 시장이 열릴 리 없다. 기업들의 줄도산 속에 세금을 걷지 못하는 정부도 손을 놓아버렸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놓인 사람들은 하루하루 더 깊어지는 지옥을 맛볼 뿐이다.
곧 다가올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한다면 공연한 협박으로 느낄까.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을 직시하면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이미 전세계 꼴찌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중인 우리나라는 매해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 즉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에서 지난해 기준 0.6명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정적 상황을 전제한 통계청의 시나리오대로라면 2026년 합계출산율은 0.59명까지 내려간다. 역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72년 연간 출생아 수는 16만명 수준이다. 2022년 연간 출생아 수(24만 6천 명) 대비 65%에 불과하다. 2022년 17.4%인 고령인구 비중은 2072년 47.7%로 증가하고, 같은 기간 생산연령인구 비중은 71.1%에서 54.3%로 하락한다. 앞머리에서 그려본 미래가 공상과학소설로 끝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통계청이 나서 '비관적 전망을 통해 출산율 하락이 가져올 사회 경제적 영향을 검토하고 이를 고려한 정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할 정도다.
이제야 위기를 실감하는지, 총선을 앞둔 여야가 인구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을 앞다퉈 내놓고는 있다. 국민의힘은 △부총리급 인구부 신설 △'아이 맞이 아빠 휴가' 의무화 △육아휴직 급여 60만 원 인상 등을 정책으로 내놓았고 민주당은 △2자녀 출산 시 24평 주택 분양전환 공공임대 제공 △신혼부부 대상 1억 대출 후 자녀수에 따른 원리금 차등 감면 △출생기본소득 등을 제안했다. 인구 전담부서를 부총리급으로 신설하자는 제안, 아이를 낳으면 1억 원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 불과 몇 년 전이었다면 터무니없는 정책이라고 비판받았을 것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도 이를 헛소리로 여기지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정책들을 동원한다 한들 인구 위기 극복을 위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가용한 예산 범위 안에서 손에 잡히는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지난 세월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부가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한 2006년부터 투입한 예산이 이제껏 332조 원이지만 출산율은 반등의 기미가 전혀 없다. 예산을 통한 지원이 대부분 융자 사업이나 일회성 현금 지원에 그치면서 인구 위기라는 밑 빠진 독에 물만 쏟아부은 셈이다.
이제라도 파격에 파격을 더해야 하는 시점이다. 국정 운영의 최우선 순위에는 단연 인구 위기 극복 대책이 놓여야 한다. 예산의 편성 역시 인구 대책에 맞춰져야 함은 물론이다. 다양한 정책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안들이 끊임없이 제시돼야 한다. 청년들의 주거가 문제된다면 신혼부부들에게, 대출 지원이 아니라 아파트를 거저 주면 어떠한가. 특히 각 지역의 아파트를 활용한다면 인구 이동에 따른 지역소멸 방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포화상태인 서울에서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서초동에 몰려 있는 법원 검찰청을 통째로 이전시켜 그 지역을 활용할 수도 있다. 국제업무지구가 된 용산의 옛 정비창 부지 역시 다자녀 가정 주택 지원 용도로 활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자녀 교육이 문제라면 고품질의 온라인 교육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다자녀 입시 혜택을 더 확대해야 한다. 영국이 시행했던 어린이펀드(Child Trust Fund)처럼,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정부가 목돈을 안겨줄 수도 있다. 손자 손녀에 대한 상속시 증여세에 일정 부분 비과세 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과도하지 않느냐 할 것인가? 인구 위기가 더 심각해지는 3년 후, 5년 후에는 오늘을 돌아보며 더 과감한 대책을 내놓았어야 했다고 후회하지 않겠는가.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내놓은 뉴욕타임스가 한국의 낮은 출산율을 지목하며 "이같이 급격한 인구 감소는 14세기 흑사병이 몰고 온 유럽의 인구감소를 능가한다"고 우려하는데, 국가를 존속케 하기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파격적 대책이 절실하다. 출산 가정은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보루이며 태어나는 아이들은 우리에게 미래를 허락해주는 주체이다. 이에 대한 투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고, 주저함이 있을 수도 없다.
정부는 조만간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한 종합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마지막으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우리가 상황을 더욱 엄중하게 인식하고 원인과 대책에 대해 그동안과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모든 부처가 함께 비상한 각오로 저출산 문제에 임해달라"고 강조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사령탑을 교수 출신 전문가에서 강한 추진력을 갖춘 관료 출신으로 바꾸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의 말처럼 비상한 각오로 다른 차원의 정책들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파격적 정책 수립과 함께 인식 개선도 시급하다. CBS가 펼치는 캠페인의 슬로건 '출산은 기쁨으로, 돌봄은 다함께'와 같은 목소리가 국민 한사람 한사람에게 스며들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당장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이 모두를 위한 적극적 예산 투입은 당위이다. 저출산이라는 전염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는 시간, 이제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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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정훈 사회부장 repor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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