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20대라” “반성해서”...사형 구형 흉악범들 무기징역 선고 이유 보니
지난 1일 경기 성남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피고인 최원종(23)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이 사건과 같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흉기를 휘두르거나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대낮에 성폭행을 하는 등 흉악범죄들의 1심 선고 결과에서 무기징역 선고가 줄지어 나고 있다. 검찰에서 사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작년 7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무차별 칼부림으로 4명의 사상자를 낸 조선(34), 작년 8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에서 30대 여성을 성폭행하려 마구 때리고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최윤종(31), 작년 8월 퇴근길 경기 성남시 분당구 AK플라자 14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최원종(23) 모두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법원은 “생명 자체를 영원히 박탈하는 사형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며 “무기징역과 가석방을 제한하는 방법 등으로 피고인을 완벽하게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방법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이유를 근거로 들었다. 개별 사건에서 법원이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한 이유들을 살펴봤다.
또래 토막살인엔 “가해자가 20대라”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2부(재판장 강현구)는 지난 1일 살인·살인미수·살인예비 혐의로 기소된 최원종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가장 극형(極刑)인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의견은 이해할 수 있으나, 매우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며 “피고인의 정신적인 문제가 이 사건 범행으로 이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등 양형요소를 종합해 보면 피고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 선고 요건이 합리적 의심이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작년 7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묻지 마 칼부림’ 사건의 피고인 조선(34·曺先) 역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2부(재판장 조승우)는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불안정한 (유년) 시기를 보냈고 학교생활에도 적용하지 못해 중도 학업을 포기했다”면서 “대외적인 교류도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 등으로 보냈고 지능지수도 75로 경계성 수준을 보인다”며 “2011년 이후 폭력으로 처벌받은 적 없고 실형으로 형사처벌 받은 전력이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을 사형에 처하는 것이 누구라도 정당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작년 8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에서 30대 여성을 성폭행하려고 마구 때리고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최윤종(31)도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재판장 정진아)는 사형을 선고하지 않은 이유로 최윤종이 군 생활 중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것 외에는 범죄 전력이 없는 점, 우울증·인격장애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충동 통제 능력이 매우 부족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었다.
작년 5월 과외 아르바이트 앱으로 알게 된 또래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정유정(24)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부산지법 형사6부(재판장 김태업)는 작년 10월 선고 공판에서 “가족에 대한 원망과 처지에 대한 분노, 대학 진학·취업에서 계속된 실패 등에 따른 부정적 감정과 욕구가 살인 등 범행 욕구로 변해 타인의 생명을 도구로 삼아 그 욕구를 실행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아직 20대인 정유정이 남은 인생살이 중 교화돼 피해자와 그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유족들 “무기징역 후 가석방되면 어쩌냐?”
무기징역 선고 시 20년간 복역한 뒤 심사를 거쳐 가석방이 가능 하다는 점 역시 범죄 피해자의 유족들이 사형 선고를 원하는 이유중 하나다. 현행 형법에는 무기징역·금고를 선고받더라도 20년 이상 복역하면 가석방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살인 등을 저지른 흉악범이 사형 선고만 피하면 가석방으로 나온 뒤 중범죄를 또 저지를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으로 숨진 고(故) 이희남씨의 유가족 측은 “혹여라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20년 후 가석방으로 출소해 또 범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하냐”라는 입장이다. 스토킹이 살인으로 이어진 ‘신당역 여성 역무원 살해 사건’의 유가족 측도 작년 10월 가해자가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자 “무기징역에 가석방은 절대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또 스토커가 여성 3명을 살해한 ‘서울 노원구 세 모녀 살인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도 2002년 1월 가해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집행돼야 마땅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한편 무기징역 선고하면서 가석방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이례적 판결 나오기도 했다. 동거하던 여자친구와 택시기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이기영(32)이 작년 10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무기징역으로 (복역하면) 20년 후 가석방이 가능하지만, 엄격한 심사를 통해 가석방을 제한해 범죄인의 사회적 격리를 달성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원종 사건의 재판부 역시 “무기징역이 확정된 수형자의 가석방 제한하는 방법 등으로 피고인을 완벽하게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무기징역형의 방법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정부 ‘가석방 없는 종신형’ 추진도
이런 비판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작년 10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는 무차별 흉기 난동 살인 사건이 잇따라 벌어지자 흉악범 처벌 강화를 위해 추진됐다. 개정안의 핵심은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무기징역과 무기금고’를 도입하는 것이다.
형법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흉악범에 대한 중벌이 추가된다. 현재는 ‘사형’과 ‘가석방이 허용되는 무기징역·금고’만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무기징역·금고’도 부과할 수 있는 것이다. 개정안에 ‘판사가 무기징역·금고를 선고할 때 가석방 허용 여부를 함께 결정해야 한다’는 조항도 마련 됐다.
현재 한국은 2007년부터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됐다. 김영삼 정부 막바지였던 1997년 12월 30일 9살 여아를 강간하고 살해한 임풍식 등 사형수 23명에 대한 교수형을 집행한 뒤, 27년 가까이 단 한건도 집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에는 59명의 사형수가 수감 중에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서 첫 서비스 출시한 실리콘밸리 기업 ‘니드’…암 치료와 비용 지원 두 마리 토끼 잡는다
- Sinan’s Art Islands Project kicks off with Olafur Eliasson’s installation
- 한동훈, 중소기업중앙회 방문 "오버 안 하고 민생 챙기겠다"
- “대구·경북 행정통합 결사반대” 안동·예천, 공동성명 발표
- “중국인 2명 이상 모이면 ‘빌런’ 발생” 서울교통공사 민원답변 논란
- 경찰, ‘음주운전’ 문다혜 이번주 검찰 송치…”법리검토 마무리”
- S. Korean shipbuilders lead hybrid ship boom
- 전영현 부회장 “반도체 100년 향한 재도약”...삼성전자 반도체 R&D 단지 설비 반입식
- 서울시 교육 복지 ‘서울런’, 내년부터 4~5세 유아도 누린다
- 김건희 여사 디올백 꺼내 든 야당 ... 박장범 “객관적이고 중립적 용어 사용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