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피화당' 작가 "'박씨전' 누가 썼나 호기심에서 출발했죠"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조선시대 한글로 쓰인 작자 미상의 우리나라 최초 여성 영웅 소설 '박씨전'.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 영웅을 탄생시킨 이는 누구였을까.
오는 7일 대학로 플러스씨어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여기, 피화당'은 '박씨전'을 누가 썼을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으로 고전 '박씨전'에 판타지를 더해 뮤지컬로 재탄생시켰다.
지난 달 31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여기, 피화당'의 작가 김한솔(36)은 '여성 영웅의 이야기라면 작가도 여자이지 않았을까', '한글 소설이니 선비가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작품을 쓰게 됐다고 했다.
김 작가는 "문학 수업을 좋아하던 학창 시절부터 '박씨전'의 작가가 누구일지 궁금했다"며 "작자 미상이라는 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안에 재미있는 요소가 많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여기, 피화당'은 병자호란 때 청으로 끌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정절을 잃었다는 이유로 죽음을 강요받는 세 여인 가은비, 매화, 계화의 이야기다. 제목의 피화당은 '화를 피한다'는 뜻이다.
김 작가는 "세 사람은 집에서 쫓겨나고, 사람들에게 더럽다고 손가락질당한다"며 "이들은 도망치다 숨어든 산속 동굴을 피화당이라 이름 붙이고, 이곳에서 함께 살아간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가은비는 '박씨전'의 주인공 박씨에 해당하는 인물로 자신을 죽이려는 시댁을 피해 도망 온 피화당에서 생계를 위해 소설을 써 내려간다. 가은비와 같은 처지인 매화는 시댁의 눈을 피해 남장을 하고 저잣거리에 나가 소설을 판다. 계화는 가은비의 몸종이다.
김 작가는 세 인물의 키워드로 가은비는 '인내', 매화는 '용기', 계화는 '희망'을 꼽았다.
"가은비는 자신이 겪었던 일에도 품위를 잃지 않고 단단하게 인내해요. 인내하고, 인내하다 마지막에 힘을 폭발시키죠. 매화는 청에서 목숨을 걸고 도망쳐 나온 인물로 남장하고 다니며 가은비와 계화를 지키려 해요. 계화는 천진난만한 딸 같은 캐릭터로 '이거 한 번 해봐요'라며 두 사람에게 희망을 주죠."
공연에서는 세 인물의 이야기가 가은비가 쓴 소설을 통해 극중극으로 펼쳐진다.
김 작가는 "알고 있는 이야기를 무대에서 보는 걸 싫어한다"며 "서점에 가서 책으로 볼 수 있는 '박씨전'을 무대에 그대로 재연하기보다 볼거리를 넣고 싶었다"고 극중극 형식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세 인물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김 작가는 '희망과 약자의 연대'라고 답했다.
그는 "많은 여자가 바다에 몸을 던졌던 당시에 이들이 그러지 않은 이유는 미약하게나마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극이 진행되면서 희망을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서로의 힘으로 동굴 밖으로 나오게 되는 구조"라고 결말을 귀띔했다.
이어 "이들은 혼자 있을 때는 현실적이고, 슬픈 넘버를 부른다"며 "하지만 같이 있을 때는 서로 웃으며 농담도 하고, 함께 부르는 넘버도 밝다"고 극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오늘날도 희망을 갖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잖아요. 혼자 힘으로는 결코 견뎌낼 수 없죠. 서로의 힘으로 희망을 되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아픔보다는 연대로 희망을 찾는 데 집중한 작품이에요."
'여기, 피화당'은 지난해 한국뮤지컬어워드에서 3관왕(작품상·음악상·극본상)에 오른 '라흐 헤스트'를 쓴 김 작가의 차기작이라는 점에서도 기대를 모은다.
김 작가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 재학하며 들었던 뮤지컬 수업 하나로 '뮤지컬 작가'라는 진로를 정하게 됐다고 했다. 대학교 졸업 후 영국 리즈대와 미국 뉴욕대에서 본격적으로 뮤지컬 공부를 했고, 2019년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초연으로 데뷔했다. 이후 '태양의 노래', '빠리빵집', '달 샤베트' 등을 무대에 올렸다.
그는 "유학 전만 해도 뮤지컬을 몇 번 본 적 없었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종합선물세트'같은 뮤지컬의 매력을 느꼈다"며 "대사로는 절대 표현되지 않는 감정을 노래로 전달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다가도 환상 신으로 쑥 들어가는 점이 너무 재미있다"고 눈을 반짝였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에 대해선 "1인극이나 이머시브 공연같이 아직은 대중적이지 않은 형식의 작품들을 만들어 많은 사람이 접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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