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자본의 힘이 밀고 들어왔던 곳…싸움이 지난 자리엔 무엇이 남았나[책과 삶]
뒷자리
희정 지음
포도밭 | 240쪽 | 1만6000원
2000년 6월29일, 노동자들이 점거 농성 중이던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전투경찰이 들이닥쳤다. 곤봉과 군홧발에 진압당한 롯데호텔 노동조합원들은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36층부터 현관까지 걸어 내려와야 했다. 당시 파업에 참가했던 김금주씨(현 롯데면세점 노조위원장)는 “너무 무서웠다”면서도 이런 장면을 회상했다. 어느 순간 ‘이거 뭐지, 왜 이렇게 당해야 하지?’라는 분한 마음이 들어서 검은 장정(경찰)들이 줄지어 선 계단을 내려오면서 팔을 치켜세우고 구호를 외쳤다.
2023년에 그 당시 상황을 다시 취재해 기록하던 희정은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롯데호텔 파업을 취재하며 강제진압 이야기가 담긴 글을 숱하게 읽었지만, 팔뚝에 힘을 주고 구호를 외치며 계단을 한 발 한 발 밟아 내려오는 여성들을 떠올린 적이 없었다. 누구도 ‘그녀’들의 이런 모습을 전해주지 않았다.”
<뒷자리>는 “국가 권력과 자본의 힘이 밀고 들어오는” 싸움자리를 기록한 책이다. 그는 책 제목처럼 한창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앞자리’가 아닌 ‘뒷자리’를 기록했다. 국가 권력이 원자력발전소, 송전탑, 군사용 폭격장 등을 만들기 위해서 밀고 들어왔던 장소들을 찾아 사람들을 만났다. 싸움 당시 실었던 기고글을 윤문해 싸움의 의미를 다시 짚고, ‘남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싸움이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아있는지 들여다본다. 1990년대 한국통신 전화안내원 근골격계 질환 투쟁, 2000년 롯데호텔 직장 내 성희롱 집단소송 투쟁, 2018년 용화여고 스쿨미투 등 최초를 써내려간 여성들의 의미있는 투쟁도 다시 꺼내본다.
싸움 한 번으로 극적인 변화가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일상은 변했다. 1995년에 한국통신 노동조합 여성국장이던 이재숙씨는 “점심시간 1시간을 우리가 30년 만에 찾은 거예요”라고 말한다. 2017년 울산의 현대자동차 제조 공단에서 경리 해고 반대 투쟁을 벌였던 강미희씨(가명)의 말로 책은 마지막을 맺는다. “설사 승리를 못하더라도, 아무것도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뭐든 다 해봤어요. 저는 제가 기특해요. 잘했어. 기특해. 난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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