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꾸리기도 어렵던 조국, 아시안컵 8강 자랑스러워”[서재원의 축덕축톡]

서재원 기자 2024. 2.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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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티 U-18팀 GK 코치 신의손
‘돌풍’ 타지키스탄 출신 K리그 레전드
27년 전 국가대표 발탁돼 A매치 출전
2일 요르단과 4강행 티켓 두고 맞대결
韓과 준결승 가능성도···“쉽지 않을 것”
타지키스탄 선수단이 지난달 29일 아랍에미리트와의 16강전에서 승리한 뒤 팬들 앞에서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신의손(왼쪽) 천안시티 U-18팀 골키퍼 코치가 지도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천안시티FC
[서울경제]

“27년 전 타지키스탄의 축구는 정말 코미디였죠. 한국과의 A매치 친선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선수가 없어서 저한테 급히 연락이 왔으니까요. 그런 팀이 아시안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뿌듯합니다.”

프로축구 K리그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 신의손(64·타지키스탄 이름 발레리 샤리체프) 천안시티 18세 이하(U-18)팀 골키퍼 코치는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모국 축구대표팀에 대한 질문을 받자 활짝 웃었다. 그는 옛소련 연방국가인 타지키스탄 출신으로 국가대표 A매치 출전 경력까지 있는 타지키스탄 축구의 산증인이다.

타지키스탄은 2일 오후 8시 30분(이하 한국 시각) 카타르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요르단과 8강전을 치른다. 신의손은 서울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타지키스탄이 8강까지 올라온 것도 기적”이라며 “타지키스탄을 응원하지만 솔직히 요르단이 경험적인 면에서 앞서있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냉정히 평가했다.

타지키스탄은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의 팀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6위로 아시아 축구에서도 변방으로 꼽히는 타지키스탄이 아시안컵 본선 무대를 밟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선 진출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대회에서 첫 승점·첫 골·첫 승·첫 16강·첫 8강 진출 등 자국의 축구 역사를 연달아 써 내려가고 있다.

타지키스탄은 대회 시작부터 이변의 주인공이었다. 한 수 위로 평가받던 중국(79위)과 대등한 경기를 펼친 끝에 0대0으로 비겨 중국 축구에 충격을 안겼다. 이후 개최국이자 디펜딩 챔피언인 카타르와 2차전에서 0대1로 패하긴 했지만 레바논과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2대1 역전승을 거둬 A조 2위(승점 4)로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타지키스탄의 돌풍은 토너먼트에서도 이어졌다. 지난달 29일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 진출을 이끈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이 지휘하는 아랍에미리트(UAE·64위)와 경기에서 1대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대3으로 승리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신의손은 “타지키스탄의 돌풍 덕분에 저도 요즘 많은 연락을 받는다”며 “그들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정말 놀랍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에서 태어난 신의손은 1978년 당시 소련 프로축구리그에 속해있던 SKA-파미르 두샨베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92년 일화 천마(현 성남FC)로 이적하면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그는 2000년 귀화 시험을 통과해 한국인으로 삶을 살고 있다. 2004년 FC서울에서 선수 생활을 은퇴한 뒤에도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신의손은 지난해부터 천안시티의 U-18팀에서 유소년 육성에 힘쓰고 있다.

신의손은 일화에서 뛰던 1997년 8월 조국의 부름을 받고 대구에서 열린 한국과의 A매치 친선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당시 신의손의 차출 과정은 타지키스탄의 축구가 얼마나 열악했는지 보여준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에서 우즈베키스탄과 맞붙게 된 한국은 비슷한 스타일의 타지키스탄과의 초청 평가전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타지키스탄 대표 선수들이 주로 뛰고 있는 러시아 리그에서 차출 불허를 결정하는 바람에 평가전이 취소될 위기에 처했고 급히 타지키스탄계 선수들을 불러 모으던 과정에서 신의손에게도 연락이 간 것이다.

신의손은 “지금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며 “저에게는 좋은 추억이지만 당시 타지키스탄 대표팀은 정말 열악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사정은 있었지만 팀 하나를 제대로 꾸리지 못했던 팀이었는데 이번 아시안컵에서 돌풍의 팀으로 불리고 있다니 정말 놀랍다. 저도 타지키스탄의 경기를 봤는데 선수들 모두 열심히 뛰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타지키스탄이 만약 요르단과 8강전에서 승리한다면 준결승에서 한국-호주의 승자와 만난다. 신의손은 “타지키스탄이 준결승에 진출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한국과 맞대결이 성사된다면 정말 재밌는 경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서재원 기자 jwse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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