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에르메스 잔에 커피 한 모금”… 지하철역에 등장한 이색 카페·스마트팜
“동네 단골 만드는 게 중요”
출퇴근길 주민 겨냥... 어린이 대상 이색체험도
“처음 방문했을 때 에르메스 잔에 커피를 줘서 놀랐다. 지금은 단골이 돼서 종종 오는데 조용해서 좋다.”
지난 30일 오후 2시 7호선 서울 반포역 지하 에스컬레이터 뒤편. 카페 겸 갤러리인 ‘갤러리사이’에 들어서자 벽면 가득 60여점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클래식이 나오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손님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모(63)씨는 “이 동네에 스타벅스 1~2개 말고는 큰 카페가 없다”며 “우연히 한 번 들어왔다가 그림도 보면서 친구들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도 좋아 주변 사람들을 데리고 계속 오게 됐다”고 말했다.
과거에 주로 옷·화장품 가게, 편의점 등이 주를 이뤘던 지하철역 상가에 이색 카페, 스마트팜, 과일가게 등이 들어서고 있다. 다소 저렴한 임차료와 단골 확보의 용이성 등을 이유로 이들이 지하철역 상가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하철 1~8호선 상가 공실률 6.9%...2020년 30%대비 줄어 “임차료 저렴”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1~8호선 상가 1547개소의 공실률은 6.9%(108개소)였다. 공실률이 30%를 넘었던 2020년과 비교했을 때 상가들이 많이 채워졌다. ㎡당 지하철 내 임대 상가 평균 월 임차료는 2019년 11만원대에서 작년 9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윤준민 갤러리사이 대표는 “주변 상권에 비해 임차료가 저렴하다”며 “주택단지가 주변에 있다 보니 단골손님들이 생기면서 문을 연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입소문으로 카페 매출만 월 1000만원가량 나온다”고 말했다.
갤러리사이는 카페 매출 외에도 신진작가 전시, 대관 사업 등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이곳은 55평(181.82㎡)에 월세가 400만원 수준인데 주변 시세보다 임차료가 3배 이상 저렴한 편이다.
오후 5시 퇴근길에 7호선 상도역에 위치한 스마트팜 복합문화공간 ‘메트로팜’을 찾은 박모(47)씨는 “카이피라를 1~2봉지를 구매하려고 왔다”며 “동네 마트에선 안 파는 채소라 퇴근하면서 여기를 종종 들러 구매한다”고 말했다.
메트로팜은 스마트팜과 카페를 함께 운영한다. 스마트팜에서 재배한 채소와 이 채소를 이용한 샐러드 등 음식을 판매한다. 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팜 채소 수확 체험 등을 진행한다.
◇코로나 이후 오프라인 구매 감소… 지하철역 유동인구 노려
5호선 오목교역 개찰구 앞 과일가게는 작년에 문을 열었다. 샤인머스캣 한 송이, 딸기 한 바구니 등을 1만원에 팔고 있었다.
역사 안에 점포를 연 이유에 대해 과일가게 사장 A씨는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온라인 주문 배달이 많아져 길거리 가게나 시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현격히 줄었다”며 “배달에 익숙해지다 보니 비, 미세먼지 등으로 날씨가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장을 보러 나오는 사람들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곳 월세는 10평(33㎡)에 400만원 수준으로 저렴한 건 아니다”라면서도 “일반 가게는 2~3년 사이에도 상권이 많이 바뀌어 타격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지하철은 이 동네 주민들이 퇴근길에 늘 지나는 곳이라 한결같은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역사 내 상가는 매일 같은 역을 지나는 동네 주민의 수요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역 상가 20여 곳에서 과일 가게가 운영 중이다. 특히 합정역 등 직장인과 1인 가구가 많은 지역에선 ‘컵 과일’ 등 소분된 과일을 주로 판매하고 퇴근 시간에 맞춰 할인도 진행한다.
그러나 여전히 지하철역 내에선 온라인 구매가 가능한 소매품을 파는 점포가 많다. 또 지하철 상가는 경쟁입찰제로 5년 단위 계약을 하는 탓에 물가와 시세를 제때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역 내 상가 공실률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에 나서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1인가구·반려동물 가구의 증가 추세에 맞춰 반려동물 용품 전문점, 무인 도시락 가게 등을 도입하고자 한다”며 “창업·취업 준비를 돕는 공간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또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의원, 약국 등 메디컬존을 확대하고, 공유 오피스, 스포츠 문화존 등을 고려하고 있다”며 “단순히 지나치는 지하철역이 아닌 다양한 경험을 소비하는 문화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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