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포럼] 운조루와 나폴리는 닮았다
(부산ㆍ경남=뉴스1)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 이태리 나폴리는 세계에서 대표적으로 아름다운 항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에 아들이 그곳으로 여행 간다기에 어떤 곳인지 궁금하여 찾아보니, 어느 여행기에서 그토록 끔찍한 도시를 일찍이 경험해본 적이 없다는 혹평이 있다. 도시 전체가 무질서하고 어수선하다는 점과 곳곳에 쌓인 쓰레기와 악취를 말한다. 거기다 치안상태마저 취약하여 세계적인 솜씨의 소매치기들과 강도 수준의 날치기는 가히 공포의 대상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나폴리가 세계 3대 미항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그것은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나폴리 항구가 아름다운 것은 뱃사람의 시각에서나 그렇다는 것이다. 뱃사람들에게는 큰 배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도록 수심이 깊고 암초가 없으며 파도도 잔잔하면 최고의 항구다.
거기다 바다에서 바라본 나폴리는 환상적이다. 산자락을 따라 빼곡히 지어진 빈민가들이 환상적인 야경을 연출하여 사람을 그리워하는 뱃사람들의 향수를 적셔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폴리는 뱃사람에게는 그토록 아름다운 미항이지만 막상 체험하는 주민이나 관광객에게는 무척이나 불편하고 추한 곳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도시이다.
얼마 전에 지리산 산사(山寺) 답사 중에 구례의 고택 운조루(雲鳥樓)에 잠시 들렀다. 운조루는 영조 52년(1776년) 낙안군수를 지낸 류이주가 전형적인 경북 지방의 전통 가옥 구조로 지은 아름다운 전통 주택이다. 특히 대단한 명당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금환락지(金環落地:금가락지가 떨어진 명당), 금구몰니(金龜沒泥:금거북이 진흙에 묻힌 자리) 및 오보교취(五寶交聚:다섯 가지 보물이 쌓인 자리)의 세 명당이 이 운조루에 모두 모여 있다고 한다.
집 앞에 훤히 펼쳐져 있는 너른 들판, 병풍처럼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뒷산, 대문 바로 앞을 힘차게 흘러 지나가는 작은 시냇물 등만 가지고도 무지한 내 눈에는 명백히 명당이라는 데 이의가 없고, 한 때 떵떵거렸을 그 집안의 가세도 짐작이 간다.
그 고택에는 지금도 종부가 살고 있어 사람의 생기가 느껴진다. 집 구석구석의 구조에서 어릴 때 살던 집의 추억도 되새길 수 있는 아직 실용적인 집이다. 안채의 장독대에는 지금도 장을 담그고 있고, 마루 앞에는 물을 담아두는 돌로 만든 물드무와 확, 그 옆에 큼직한 맷돌도 있다. 이들은 이제 그냥 구경거리인 듯하다. 대청마루와 기둥은 세월의 주름살이 깊게 패여 있어 걸레질이 염려되고, 창호지를 바른 방문과 창문을 보니 한겨울 한기가 걱정된다.
그곳에 사는 종부의 쓸쓸한 삶을 생각해본다. 그 집안의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나도 한 집안의 정통을 떠맡은 입장이다 보니, 지레 짐작으로 괜히 가슴이 답답해진다.
모든 변화는 고통을 수반한다. 그래서 변화에는 항상 저항이 따른다. 그런데 변화하지 않고 전통을 꼬장꼬장하게 유지하고 지키려는 것은 더 큰 고통일 수 있다. 그 고통을 온전히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 종부다. 쇠락해가는 한 가문의 전통을 오로지 물려받아 실행하고 그것을 흩트리지 않고 평생 안채를 꼬장꼬장하게 지켜왔을 것이다. 하지만 목숨처럼 지켜온 숙명의 그것은 이제 공룡의 화석처럼 누구도 받아 지키려하지 않는 공허함 그 자체가 되어 버리고, 아마도 홀로 외롭게 그 허무를 지키고 있을 것 같다.
그 대단한 명당에서 수백 년 이어온 벌문의 종부라는 삶은 이제 깊이 갈라지고 패인 마룻바닥처럼, 다시는 도저히 쓸모가 생기지 않을 섬돌 앞의 맷돌처럼 허무하고도 가볍고 슬픈 것이 되어 버린 듯하다. 천하의 금환락지의 발복을 욕망하고 믿었다면, 언젠가 그 기운의 쇠락도 예견했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인간의 지혜는 거기에서 멈추고 마는가 보다.
그렇게 운조루와 나폴리는 닮았다. 많은 관광지가 다 그럴 것이다. 구경꾼들에게는 너무도 아름답고 부러운 모습이기에, 일부러 시간과 비용을 들여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간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버겁기만 한 삶의 짐일지도 모른다. 보는 삶과 누리는 삶의 괴리가 그렇게 크다. 그러니 남의 삶을 가벼이 스쳐보고 쉽게 재단할 일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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