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건설 ‘기회의 땅’ 폴란드] ③”유럽 진출 입지 다졌다” EU 최대 규모 공장 짓는 현대엔지니어링
한국 건설사 특유의 사업수행 역량 인정받아
폴란드 거점으로 우크라 재건사업·유럽 진출도 입지 구축
“유럽 진출의 관문이자 물류 요충지” 지난해 폴란드를 공식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폴란드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건설기업들 사이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폴란드를 발판 삼아 재건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다소 생소한 동유럽 국가, 폴란드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우리나라 건설인들을 직접 만나봤다. [편집자주]
지난달 22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차를 타고 2시간쯤 달리자 도착한 푸오츠크(Plock) 지역. 멀리서 폴란드 최대 국영정유기업인 ‘PKN 올렌(PKN Orlen)’의 석유화학단지가 보였다. 석유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산성가스인 황화수소(H2S)를 제거하기 위해 우뚝 솟은 굴뚝에선 불기둥을 활활 내뿜고 있었다.
기존 석유화학 공장이 보이기 시작한 시점부터 15분은 차로 더 달리자 현대엔지니어링이 스페인 건설사인 테크니카 레우니다스(TR)와 수주한 ‘폴란드 PKN 올레핀 확장공사’ 현장이 나타났다. 유럽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단지인 만큼 멀리서도 한 눈에 보이는 거대한 스플리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사 현장 안으로 들어가자 현재는 배관 작업이 한창이었다. 현장에서 가장 규모가 큰 프로필렌 생산 설비 ‘C3 스플리터’가 지난해 설치 완료됐는데, 그 주변으로 노란색의 배관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스플리터는 분해 공정을 위한 프로필렌 생산 설비를 말한다. 스플리터 바로 앞에는 기계 설치를 위한 토목공사도 동시에 진행 중이었다.
◇”폴란드서 사업능력·리스크 관리 이미 입증”
PKN 올레핀 확장공사는 연간 74만톤의 에틸렌 생산 공장을 짓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공사비만 4조352억원에 달하고 작업자들을 포함한 최대 현장 동원인력도 약 9700명에 달한다. 에틸렌은 ‘석유화학산업의 쌀’로 불리며 다양한 석유화학제품의 기초 원료로 사용된다. 원유를 정제해 얻은 나프타 및 액화석유가스 등을 열분해해 제조한다.
현대엔지니어링과 TR 컨소시엄은 지난 2020년 경쟁입찰 과정에서 두 컨소시엄이 각자의 기본설계(FEED) 방식을 제안하는 ‘듀얼피드(Dual FEED)’의 최종 계약자로 선정됐다. 두 컨소시엄 중 한 곳만이 수주할 수 있었는데, 발주처로부터 기본설계 및 사업수행 능력과 앞서 수행했던 폴란드 역대 최대 석유화학 플랜트 프로젝트에서 역량도 인정받아 2021년 수주에 성공했다. 참여 형태는 현대엔지니어링이 55%, TR이 45%다.
이승동 현대엔지니어링 EOSE 프로젝트 상무는 “2019년 수주해 준공을 앞둔 ‘폴란드 폴리머리 폴리체 PDH/PP 프로젝트’에서 쌓은 사업관리 역량과 리스크관리 역량을 발주처로부터 인정받은 점이 수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체 공정률은 57.58%로, 계획보다 약 4.06% 앞서고 있다. 공정 부문별로는 설계가 98.72%로 종결 단계고, 구매 75.22%, 시공 34.18%로 진행률을 보이고 있다. 특히 높이 110m에 1200톤(t)에 달하는 대형 C3 프로필렌 설치를 지난해 완료하면서 시공에 속도가 나고 있다. 배관 설치는 진행 중이고, 2월부터는 전기 설비가 진행된다. 인근 레이다운(시공에 필요한 설비, 제품 등을 보관하는 장소)에는 전기 설비를 위한 케이블이 셀수 없을 정도로 깔려있는 모습이었다.
◇날씨·우크라 전쟁 등 악조건에서도 ‘공기 단축’ 노력
이날 현장에는 진눈깨비 같은 눈이 내려 흙바닥이 질퍽했다. 폴란드 현장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고 해도 빨리 지기 때문에 공사를 진행하기엔 어려운 환경이다. 근로자 중심의 엄격하고 복잡한 노동법으로 인해 현지 인력 관리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엔지니어링은 6개월의 공사기간 단축을 목표로 한국 건설사 특유의 사업비 절감 역량을 발휘할 계획이다. 기존 공기는 2026년 2월이지만 2025년 8월 기계적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애초에 수주 당시 계약된 공기는 2024년 4월 말이었다. 그러나 수주 4개월 만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자잿값이 급등하고 전쟁 동원령으로 인해 임금도 크게 올랐다. 파트너사인 TR마저 공사 중단 카드를 꺼내자 현대엔지니어링은 직접 발주처와 파트너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발주처의 사업 진행 의지를 확인 후 금액과 추가 공기를 위한 클레임도 진행했다. 1년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20여 차례의 미팅과 협의를 거쳐 결국 지난해 계약서를 변경했다.
이승동 상무는 “공사비 증액과 공기 연장을 끌어내지 못했다면 사업비의 20% 이상 손해볼 뻔 했다”며 “보통은 사업 현장에서 1~2% 남기기도 힘든데, 더 이상 큰 일이 없고 예상대로 공기를 당긴다면 그 이상 수익이 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참여를 위한 디딤돌도 착실하게 쌓고 있다. 우크라이나 진입을 위한 관문인 폴란드에서 일찌감치 플랜트 사업을 하면서 높여둔 인지도, 현장 경험 등으로 다른 건설사들보다 재건 사업에 앞장설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바르샤바에서 진행된 ‘2023 우크라이나 재건 박람회’서 재건 사업을 위한 MOU를 2건이나 체결했다. 비료와 화학 플랜트 복구 및 신규 건설, 모듈러 건축 사업 공동 개발 협력과 관련된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폴란드를 거점 국가로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유럽 전체에 대한 시장조사도 진행 중이다. 이 상무는 “현대엔지니어링은 폴란드 진출뿐 아니라 지속적인 유럽 건설시장 진출을 통해 당사의 입지를 굳힐 것”이라며 “향후 발주 예정인 다른 대형 플랜트 사업의 추가 수주를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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