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증시 생존 조건]② 상속세 낼 때마다 주가 뚝뚝… ‘최대 60%’ 세율에 기업들 덜덜

정민하 기자 2024. 2.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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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만만 낸다’ 부자 감세 논란도 옛말
24년간 그대로인 상속세 구조… 그사이 물가는 70% 뛰어
“주가 저평가 야기… 상속세 기능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명목 GDP는 1조6733억달러다. 수치로만 보면 전 세계 13위에 해당하는 경제 대국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은 ‘대국’과 다소 거리가 먼 모습이다. 우리나라 증시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닌다. 기업은 짠물 배당에 익숙하고, 소액주주는 늘 찬밥 신세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을 벤치마킹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 받는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1984년 유명 제약회사 아스트라AB의 최대 주주였던 샐리 키스트너가 사망하자 그의 자녀들은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보유 주식을 매도했다. 당시 스웨덴은 상속세 최고세율이 70%에 달했다. 자녀들은 상속세가 상속 재산을 웃돌자 부득이 주식 처분에 나섰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회사 주가는 폭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스트라AB 일가는 주식 전량을 처분하고도 상속세를 다 납부하지 못한 채 스웨덴을 떠났다.

당시 헐값에 매각된 아스트라AB는 영국 제네카에 인수됐다. 현재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한 아스트라제네카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에도 스웨덴에선 과도한 상속세를 피한 기업의 해외 이탈이 가속화했다. 결국 스웨덴 정부는 2005년 상속세를 폐지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위쪽)과 삼성 오너가(家). 왼쪽부터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로이터 연합뉴스·뉴스1

우리나라는 어떨까. 지난 1월 9일, 주식시장이 개장하자마자 삼성전자 주가가 급락세로 돌아섰다. 이 회사 주가는 이후 4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주가 하락 배경은 복합적이었는데, 전문가들은 삼성 오너 일가가 상속세를 내기 위해 2조1690억원어치 주식을 매각한 사실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봤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이후 삼성 오너가는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2021년부터 분할 납부해오고 있다.

한국은 최고 상속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은 50%다. 최대 주주 할증을 더하면 최고세율은 60%에 달하는데, 이 경우 일본보다 높아진다. 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상속인은 보유 지분을 처분한다. 이전엔 유통되지 않았던 지분이 시장에 풀리면 주가가 하락하고, 결국 피해는 개미(개인투자자)가 입게 된다.

기업 체력도 약화한다. 상속 과정에서 지배 지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물려주면서 분산된 지분을 자녀들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또 내다 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3세 승계를 거친 국내 주요 대기업은 최대 주주 지분이 10~20%에 불과하다. 언제든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수 있는 구조다.

일러스트=정다운

2000년도만 해도 상속세를 내야 할 규모의 상속재산을 남긴 피상속인이 1389명에 불과했다. 피상속인은 2022년 1만5760명으로, 22년 만에 10배 넘게 늘어났다. 전체 상속 신고 대상 중 상속세를 내야 하는 비중도 2000년 0.66%에서 2022년 4.53%로 커졌다. 더는 상속세가 부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세금이 아니라는 의미다.

상속세 제도는 24년간 방치됐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1996년 제정됐는데, 2000년 최고세율이 45%에서 50%(최대 주주는 60%)로 오르고 최고세율 과표 구간을 50억원에서 30억원 초과로 낮춘 뒤 사실상 그대로다. 문제는 그 사이 물가가 1996년 대비 97%, 2000년 대비 70% 뛰었다는 점이다. 결국 아파트 한 채 보유한 중산층도 몇억 원대의 상속세를 내게 됐다.

국세청이 최근 발간한 ‘2023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상속인이 내야 하는 상속세 결정세액은 19조2603억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 4조9131억원보다 네 배가량 증가했다. 삼성그룹 일가의 상속세를 제외하더라도 2022년 상속세 결정세액은 약 7조2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년 전보다 약 1.5배 많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네번째,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에 정부는 유산세의 유산취득세 전환 등 상속세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유산세 방식은 물려주는 세금 총액에 세금을 매기지만, 유산취득세는 상속인 각자가 받은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기에 상속인이 두 명 이상이면 상속세 부담이 낮아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금융 분야 민생토론회에서 한국의 상속세를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의 주된 요인으로 꼽고, 상속세 개편 방침을 시사했다. 윤 대통령은 “웬만한 상장 기업이 가업을 승계한다든가 이런 경우에 주가가 올라가게 되면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면서 “주식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과도한 세제는 우리 중산층과 서민에게 피해를 준다. 이런 과도한 세제를 개혁해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우리나라) 상속세는 선진국보다 너무 높고, 기업 지배구조를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며 공론화 과정을 거쳐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편에선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며 “대통령이 화두를 던진 것으로 실제로 추진하려면 사회적 공감대를 충분히 생각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얘기를 많이 듣고 신중하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은경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높은 상속세 부담은 기업 또는 오너로 하여금 보수적인 경영 전략 시행 유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소극적인 주주환원정책 시행, 오너가 보유 비상장사로 신성장 사업 이전 등은 투자 심리 위축과 주가 저평가를 야기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의 순환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한 상속세가 현실에선 정반대의 영향을 미치고 있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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