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당뇨 물려준 채 떠난 이들…성장도 죽음도 빨랐다[멸종열전]

기자 2024. 2.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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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네안데르탈인
네안데르탈인은 바늘을 발명하지 못해 빙하기 추위를 막을 옷을 지어입을 수 없었다. 기껏해야 동물 가죽을 걸쳐입는 게 전부였다. 전곡선사박물관 이한용 관장 제공

인류의 진화를 가장 멋지게 전시한 곳은 전곡선사박물관이다. 여러 종류의 인류들이 한 방향을 향해 걷고 있는 장면은 장관이다. 작은 인류가 앞장서고 있고 큰 인류가 뒤따른다. 아름다운 전시를 보면서 관람객들은 빠져든다. ‘앞의 인류에서 뒤쪽의 인류들이 차례대로 진화했구나’라는 오해도 다시 떠올린다. 전시와 해설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다만 꼬리 달린 원숭이, 침팬지, 작은 인류에서 현대인까지 순서대로 그려진 그림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예전엔 교과서에도 실렸던 그림이다. 그림은 순서대로 차곡차곡 인류가 등장한 것이란 오해를 우리 뇌에 각인시켰다. 꼬리 달린 원숭이와 꼬리 없는 유인원은 3000만년 전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서 자기의 길을 걸었다. 침팬지와 인류는 700만년 전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와 각자의 길을 걸었다.

인류도 다양한 진화 경로를 거쳤다. 그러다가 왠지 작은 고릴라 같은 외형을 가진 파란트로푸스 속과 우리처럼 호리호리한 호모 속으로 갈라섰다. 주로 구근을 먹는 초식성 인류 파란트로푸스 뇌는 500㏄ 정도로 침팬지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에 비해 호리호리한 호모 속은 뇌가 훨씬 컸다.

단지 하이델베르크 지역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하이델베르크인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10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등장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뇌 용적은 1100~1400㏄로 현대인과 큰 차이가 없다. 마찬가지로 네안데르 계곡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네안데르탈인으로 불리지만 아프리카 바깥에서 45만년 전에 등장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뇌는 1600㏄나 되었다. 자기 스스로 ‘슬기로운 인간’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인 호모 사피엔스의 뇌 용적 1400㏄보다도 크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호모 속도 큰 뇌를 가지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다. 뇌는 1㎏당 11.2W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사람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체중 1㎏당 1.25W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뇌는 아주 비효율적인 기관이다. 뇌를 키우려면 어딘가에서는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 근육과 피부는 각각 1㎏당 0.5W와 0.3W만을 사용하는 아주 효율적인 기관이다. 근육과 피부에서는 줄일 에너지가 없다. 뇌보다도 에너지를 많이 쓰는 기관에서 줄여야 한다.

심장과 신장은 각각 32.3W와 23.3W를 사용한다. 이것들의 크기를 줄이면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겠지만 진화는 그 방향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도 줄일 게 없다. 의외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관은 바로 내장이다. 내장은 1㎏당 무려 12.2W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내장은 에너지를 얻기 위한 기관인데 스스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전혀 효율적이지 않은 기관이다.

내장의 필요를 줄여야 한다. 조금 먹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성되는 에너지가 줄어드니 말이다. 답은 정해졌다. 식성을 바꾸는 것이다. 고기를 먹어야 했다. 고기는 식물보다 훨씬 소화가 잘된다. 소화기관의 길이를 훨씬 줄일 수 있다. 호리호리한 인류는 내장을 줄이는 대신 뇌를 키울 수 있었다. 물론 스스로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런 방향으로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난 개체가 자연에 의해 선택되었을 뿐이다.

진화는 위 그림과 달리 직선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가지를 치며 뻗어나간다.

4만년 전 지구에는 여전히 다양한 종류의 인류가 살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인류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다. 우리보다 체구는 조금 작았지만 몸은 더 다부졌고 심지어 뇌도 우리보다 더 컸던 네안데르탈인은 왜 살아남지 못했을까?

우리보다 힘이 센 네안데르탈인은 우리보다 매일 400㎉의 열량이 더 필요했다. 매일 100g의 단백질을 더 섭취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기 330g을 더 먹어야 했고 사냥을 아주 많이 해야 했다. 다행히 똑똑해서 돌과 뼈, 나무 등을 이용해서 창이나 손도끼 등 다양한 종류의 도구를 만들었다. 힘보다 머리를 써서 사냥했다. 현생 아프리카코끼리보다 두 배 이상 거대한 팔라이올록소돈속 코끼리도 사냥했다.

그래도 항상 식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먹을 게 있을 때 잔뜩 먹어서 몸에 지방을 쌓아둘 방법이 필요했다. 그 방법이 우연히 생겼다. SLC16A11 유전자가 생긴 것이다. 이 유전자는 빠르게 지방을 몸에 저장하는 역할을 해준다. 네안데르탈인도 언어가 있었다. 혀의 근육과 후두를 연결해주는 설골과 언어와 관련이 있는 FOXP2 유전자가 있다는 게 그 증거다. 다만 인두와 후두 사이 거리가 짧아서 다양한 발음을 하지는 못했다. 대표적으로 ‘이’와 ‘우’ 발음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흥얼거리는 정도였다는 뜻은 아니다. 똑똑하고 사냥도 잘하고 언어도 있는데 왜 멸종했을까?

45만년전 등장한 인류의 조상…호모 사피엔스보다 큰 뇌 크기 ‘많은 에너지 소모’ 골머리
뛰어난 사냥 실력에도 늘 식량 부족…생존 위해 ‘체내 지방 저장 DNA’ 생겨
현대인에 남아있는 이들의 ‘흔적’…개인·집단간 활발했던 교류 증거

네안데르탈인은 항상 작은 사회만 구성했다.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 훨씬 작은 규모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사회성도 상당히 떨어졌다. 가족이 죽으면 장례를 치르기도 했지만 동족 간의 결속이 약해서 서로 협력하지 못했다. 더 중요한 문제는 큰 사회를 구성할 만큼 인구가 많아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40만년 이상 존재하면서 단 한 번도 총 인구가 7만명을 넘어본 적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기본적으로 수명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구석기 시대 사람의 수명을 평균 수명으로 따지는 것은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별 의미가 없다. 당시에는 유아 사망률이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구석기인들도 유아기를 지나면 생존확률이 굉장히 높아졌다. 구석기 시대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60~70세까지 수명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네안데르탈인의 기대 수명은 30~35세에 불과했다.

치아를 보면 네안데르탈인의 생애를 알 수 있다. 치아는 한 인간의 생체 시계를 통째로 간직하기 때문이다. 이빨은 아래에서 나서 위로 자란다. 위쪽은 아래쪽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위쪽에는 성장선이 있는데 처음 이빨이 나왔을 때의 상황을 알려주고 아래쪽에 있는 사망선은 사망할 무렵의 상태를 알려준다. 그 사이에는 스트레스 선들이 있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거나 병에 걸렸던 흔적이 줄로 남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열 살쯤 어금니가 나온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인은 여섯 살에 벌써 어금니가 나온다. 이것은 유년기가 호모 사피엔스보다 4년이나 짧다는 것을 말한다. 수명이 짧기 때문에 하루빨리 자라서 일찍 죽은 연장자의 자리를 메꿔야 했다. 뿐만 아니라 사춘기도 빨랐다. 2차 성징이 빨리 와서 일찍부터 번식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했다. 성장이 빠르면 당연히 노화 시기도 당겨진다. 네안데르탈인은 짧은 생애를 평생 바쁘게 살아야 했다.

특히 유년기가 짧다는 것은 네안데르탈인에게 치명적이었다. 유년기는 정말 중요한 시기다. 부모의 지극한 보살핌 속에 안전하게 머물면서 복잡한 사회규칙을 배우고 생존 전략을 깨닫고 놀면서 창의력을 키우는 시기다. 창의력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별난 아이디어가 아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있다. 이미 있는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새롭게 조합해서 나오는 것이 창의력이다. 창의력이 생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멍하니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오래 놀아야 한다. 놀면서 놀이의 규칙을 만들고 이기는 전략을 짜며 협동하는 연습을 한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은 유년기가 너무 짧았다.

놀지 못하는 게 무슨 대수일까? 가끔 가다가 대수인 경우가 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뿔피리는 어떻게 나왔을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는 어릴 때 풀피리를 불었다. 그들도 그랬을 것이다. 어느 순간 속이 빈 새 뼈를 불어보니 소리가 났다. 뼈의 길이마다 음이 달랐다. 누군가는 뼈에 구멍을 내고 다른 음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뿔피리가 생존력을 높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서 손재주가 늘었다. 섬세한 가공기술이 생겼다. 급기야 뿔바늘에 구멍을 낼 재주도 생겼다. 놀다가 얻은 재주다.

호모 사피엔스와 달리 네안데르탈인은 바늘귀가 있는 바늘을 발명하지 못했다. 평상시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빙하기가 찾아오자 치명적이었다. 바늘귀에 실을 꿸 수 있었던 호모 사피엔스는 좋든 나쁘든 팔과 다리를 가릴 수 있는 옷을 지어 입었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은 기껏해야 동물 가죽을 걸쳐 입는 게 전부였다. 추위에 약했고 식량 활동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식량이 줄자 급격히 인구가 줄었다. 인구가 줄자 짝짓기가 점차 힘들어졌다. 수만명에 달하던 인구가 5000명으로 줄었다. 예전에는 산 한두 개만 넘으면 짝을 찾을 수 있었으나 어느 순간 수십 ㎞를 이동해야 다른 네안데르탈인을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짝을 짓지 못하니 인구는 급격히 줄었다. 열 명으로, 다섯 명으로. 그러다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은 아직 살아있다. 바로 우리 호모 사피엔스 안에 살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의 몸에 재빨리 지방을 축적하게 해준 SLC16A11 유전자는 우리 몸속에 남아 현대인의 비만과 당뇨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현대인에게 남아 있는 자폐 유전자 역시 네안데르탈인이 남겨준 것이다. 현생 인류에게 공포의 대상인 남성형 탈모 유전자도 이들에게서 온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에게 물려받은 OSA1~3 유전자 3개를 가진 사람은 코로나19 중증 위험이 22%나 낮았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사람을 제외한 모든 현대인의 유전자 가운데 1~4%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온 것이다. 아니 우리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왜 현대인의 세포에 남아 있을까? 간단하다. 7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탈출한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이 다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도 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교류가 충분히 있었다는 뜻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이제 더 이상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로 불러야 한다.

독일 해부학자 헤르만 샤프하우엔이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을 연구한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고인류학의 문을 열고 인류의 조상과 역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게 1857년이다.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되기 겨우 두 해 전의 일이다. 그런데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우리 안에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밝힌 스반테 페보 박사에게 돌아갔다. 분자생물학은 고인류가 서로 사랑했음을 알려주었다.

▶필자 이정모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이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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