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을] 이야기―감기
한겨레 2024. 2. 2. 05:06
감기는 목덜미로 온다더라 까치가 집을 짓고 있는 플라타너스 아래 낮 한 시 반쯤 옷깃을 세워주며 네가 말해주었는데 기억한다 우리는 횡단보도 앞에서 파란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보다 느리고 봄만큼 짧게 영상의 기온인데 감기라니 너는 걱정이 너무 많아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네가 말했지 사랑해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닌데도 미래는 오가는 것들을 잠시 세우고 죽은 듯 조용할 거였고 그럼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을 거였고 때 아닌 재채기 같은 마른가지 하나가 네 머리 위로 떨어졌다 너 대신 내가 올려다본 공중에는 가늘게 쪼개진 빛이 동그란 거처를 만들어 그늘을 품고 있었다 우리는 깔깔대며 웃었다 정말 그런 사이가 된 것처럼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유희경의 시집 ‘겨울밤 토끼 걱정’(현대문학,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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