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고라니가 우는 그 마음은 알 것도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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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울고 있는 모습에는 채 펼쳐지지 않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우리 모두 울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혹은 그 울음을 애써 참거나, 숨겨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마음을 '알 것 같은' 것이다.
역으로 특별하게 존중받아야만 마땅한 사안이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되면서 생겨나는 마음 또한 있을 텐데, 시는 때때로 바로 그와 같이 펼쳐지지 않은 마음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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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에 말리면 가벼워진다
정다연 지음 l 창비교육(2024)
누군가 울고 있는 모습에는 채 펼쳐지지 않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다른 누군가에게 어떻게 비칠지에 대한 의식 없이 표정을 구기고, 의미를 좀처럼 이루지 못할 울음소리를 터뜨리는 데에는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연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울고 있는 이를 마주하게 되면 그이에게 다가가 구구절절 사연을 캐묻지 않더라도 그이의 마음 상태만큼은 어떤 풍경일지 감히 짐작할 수 있다. 슬픔과 고통, 때로는 분노와 서러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결들이 울음 속에 있을 거라고. 우리 모두 울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혹은 그 울음을 애써 참거나, 숨겨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마음을 ‘알 것 같은’ 것이다.
‘마음을 안다’란 무슨 말일까. 이를 생각해보는 일은 왜 중요할까. 정다연의 청소년 시집 ‘햇볕에 말리면 가벼워진다’에는 삶의 국면마다 쉽게 정리되지 못하는 마음의 결을 어떻게 들여다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를 정(淨)한 언어로 써 내려간 시편들이 담겨 있다. 누군가는 인생에서 으레 일어날 법한 일이라며 심상하게 넘길 순간들에 대해서도 정다연의 청소년 화자들은 처음 겪는 일로, 여러 번 겪었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일로 마주한다. 이를 통해 마음은 사라지길 바란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므로 심상하게 넘기길 바라는 순간들에도 맺히기 마련이고, 그것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면 별것 아닐 일마저 별것이 된다는 사실을 배운다. 역으로 특별하게 존중받아야만 마땅한 사안이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되면서 생겨나는 마음 또한 있을 텐데, 시는 때때로 바로 그와 같이 펼쳐지지 않은 마음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한 사람이 어른으로 자라는 과정이란 마음을 점점 무디게 만드는 일에 능숙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헤아리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밤새 고라니가 운다// 우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는 마음은 알 것도 같아서// 잠이 오지 않는다// 할머니 생각이 난다 잠 못 드는 밤,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질해 주시곤 했는데// 여름이 오면 물컹한 복숭아 입에 한가득 넣어 주셨는데// 엄마 아빠는 잠들었고// 나는 깨어 있다 혼자// 낮에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조만간 이 집을 정리하자고, 돈은 나중에 공평하게 나누자고// 이불을 덮으면 이렇게나 할머니 냄새가 나는데// 자주 입으시던 꽃무늬 바지 여전히 빨랫줄에 걸려 있는데// 할머니만 없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고라니가 울어서// 그 마음은 알 것도 같아서” (‘여름 이야기’)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웬만해선 소리도 냄새도 잘 남기지 않는다는 고라니가 울고 있다면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건 분명 큰일이 일어나서일 것이다. 할머니의 손길이 묻어 있는 집이 조만간 정리된다는 소식은 시의 화자인 ‘내’게도 큰일이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했던 시간과 장소가 사라질까 겁나는 마음을, 할머니가 그리워서 울고 싶은 마음을 ‘고라니’의 ‘우는 마음’에 포개둔다. 울면서, 혹은 울음을 감추면서 각자의 슬픔으로 밤을 지새우는 이들이 여기 있다. 서럽게 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루가 멀다고 신문을 통해 전해지는 요즘, 마음은 없는 이가 없다는 것, 마음은 ‘있는’ 것이란 사실을 이렇게 적는 시가 새삼스레 다가온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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