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지혜로운 시민이 ‘좋은 정치’ 만든다
서양 학문 토대 ‘세 철학자’ 읽기
폴리테이아=민주공화정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좋은 정체
영원한 현재의 철학
21세기 삶을 위한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
조대호 지음 l EBS북스 l 1만6800원
고대 그리스 철학 전문가 조대호 연세대 교수가 쓴 ‘영원한 현재의 철학’ 은 서양 철학과 학문의 토대를 닦은 세 철학자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 플라톤(기원전 427~347),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의 사상을 간명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 지은이가 보기에 세 철학자의 사상은 서양 정신의 오래된 토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생생히 살아 있는, 그래서 ‘ 영원성 ’ 을 획득한 ‘현재의 철학’ 이다. 지은이는 스승-제자로 이어지는 세 철학자의 드넓은 사상 세계 가운데 특히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 을 살피는 데 중점을 둔다.
눈여겨볼 것은 세 사람의 삶에 각각 43년의 시차가 있다는 사실이다.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고 43년 뒤에 플라톤이 나왔고, 플라톤이 태어나고 43년 뒤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왔다. 대략 150년을 셋으로 나누어 산 셈인데, 이 시기마다 세 사람이 활동한 무대(아테네)는 커다란 변동을 겪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전성기에 태어나 펠로폰네소스전쟁으로 아테네 민주정이 타락하던 시기를 살았다. 플라톤은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배한 뒤 쇠락해 가던 시기에 철학적 사유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도시국가가 해체돼 알렉산드로스 제국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활동했다. 이런 시대 상황의 차이가 세 철학에 저마다 다른 성격을 각인했다.
언뜻 보면 소크라테스는 정치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던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사유와 활동에서 ‘올바른 정치’에 대한 열망을 읽어낸다. 플라톤 대화편 ‘고르기아스’에서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참된 정치술을 시도하며 정치를 행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라고 생각하네.”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무지를 깨우치는 것이야말로 ‘참된 정치술’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언어가 타락한 시대에 언어의 바른 뜻을 물음으로써 사람들의 생각을 일깨우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자 정치술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캐묻지 않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도 했다. 캐묻지 않으면 나쁜 정치에 휩쓸린다. 캐묻는 일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시민의 정치적 판단 역량을 높이려 했다.
소크라테스 사형을 겪고 철학에 뛰어든 플라톤은 나라가 폭풍우 속에 표류하는 배와 같다고 여겼다. 나라를 구하려면 단호한 처방이 필요했다. 여기서 플라톤이 내놓은 것이 이데아론이다. 참된 것은 보이지 않는 천상에 있다. 이 천상의 이데아를 찾아가는 것이 철학이다. 플라톤은 이 이데아의 형이상학을 현실정치의 처방책으로 삼아 철인정치론을 펼쳤다. 진리를 모르는 대중에게 정치를 맡겨두어서는 나라가 침몰할 수밖에 없으니, 지혜로운 철인을 통치자로 세워 이데아를 향도성으로 삼아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믿음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경험 세계를 관찰한 사람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로고스’(이성)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다. 로고스는 상상하고 비교하고 추론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로고스는 두 얼굴의 무기다. 인간은 로고스를 지녔기에 동물 가운데 최상의 존재가 됐지만, 동시에 로고스를 악용해 한없이 사악한 짓을 벌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로고스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철학의 가장 큰 숙제가 될 수밖에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삶의 목표를 ‘에우다이모니아’에 두었다. ‘잘 삶’(행복)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잘 살 것이냐는 물음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 윤리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잘 살려면 ‘함께’ 잘 살아야 한다고 보았다. 공동체의 ‘잘 삶’이 개인의 ‘잘 삶’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다. 그리하여 윤리학은 정치학으로 이어진다.
경험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도시국가 158곳의 실상을 연구해 정치체제를 통치자의 수에 따라 세 종류(일인정‧소수정‧다수정)로 나누었다. 또 그 셋을 다시 ‘좋은 정체’와 ‘나쁜 정체’로 나누어 모두 여섯으로 분류했다. 왕정과 참주정, 귀족정과 과두정, 폴리테이아와 데모크라티아가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를 가르는 기준을 ‘공익성’에서 찾았다. 정치가 전체 시민의 이익에 복무하는가, 아니면 지배 집단의 이익에 봉사하는가를 판단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더 주목할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인이나 소수의 정치보다 다수의 정치에 더 큰 신뢰를 두었다는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체제 중 다수정은 ‘폴리테이아’와 ‘데모크라티아’다. 아테네 혼란기의 직접민주정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데모크라티아의 전형이다. 폴리테이아는 흔히 ‘혼합정이라고 부르는데, 오늘날의 ‘민주공화정’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테이아 곧 민주공화정을 좋은 정체의 모범으로 보았다.
스승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중의 집단지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집단지성이 항상 작동하는 것은 아님도 강조했다. 대중은 ‘들짐승처럼’ 물고 뜯으면서 사회를 분열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집단지성이 잘 작동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의 ‘이성 능력’에서 답을 찾았다. 이성이 집단적으로 잘 발휘되는 것이 ‘좋은 민주정’의 조건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는 명제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명제가 합쳐진다. 인간은 이성을 지닌 정치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이성 능력이 구현되려면 어떤 사회적 조건이 필요한지도 살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지배하려고만 하는 사람들(상층)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지배받기만 하는 사람들(하층)은 자기 의견을 말할 줄 모른다. 그러므로 시민의 집단적 지혜가 잘 발휘되려면 ‘중간층’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이때의 중간층은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중간계급을 말한다. 그렇다면 빈부격차를 줄여 중간층을 키우는 것이 민주주의에 관건이 된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통찰을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좋은 민주정은 시민의 역량 없이는 세울 수 없다. 그러나 시민의 역량은 경제적 평등 없이는 키울 수 없다.’ 지혜로운 시민이 평등한 나라, 좋은 정치를 만든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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