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우리가 몰랐던 ‘진짜’ 허준을 만나다
중국 의서 본초명과 조선 향약명 대조, 한글 표기
궁벽진 시골 백성들도 쉽사리 찾아 쓸 수 있게
허준 평전
네 얼굴의 유의
김호 지음 l 민음사 l 2만원
조선 최고의 명의이자 의학서 ‘동의보감’의 편찬자인 허준(1539~1615). 베스트셀러 소설과 드라마 덕분에 사람들은 그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지식은 대개 피상적이고 더 나아가 그릇된 것일 경우가 많다. 가령 드라마에서는 허준이 경상도 산청 출신이고 유이태가 그의 스승으로 그려졌지만 둘 다 사실이 아니다. 유이태는 허준보다 무려 100여년 뒤에 태어난 인물이고, 허준의 출생지는 양천(현재의 서울 강서구)이라는 설과 전라도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을 뿐 산청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설정이다.
이런 오류와 혼란은 일차적으로는 허준에 관한 사료가 태부족하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20여년 전 ‘동의보감’을 다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 김호 교수(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쓴 ‘허준 평전’은 부족한 자료를 최대한 섭렵해 허준의 실체에 다가가고자 한 시도다. 평전이라고는 하지만 이 책은 여느 평전과는 편제가 다르다. 전체 4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1장에서 사료를 근거로 허준의 생애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나머지 3개 장은 주제별 서술로 1장의 내용을 보충 설명하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우선 허준의 출생 연도부터 바로잡는다. ‘양천허씨세보’에는 허준이 1547년생으로 되어 있지만, 그는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베푼 잔치를 담은 그림 ‘태평회맹도’의 기록과 당대 최고 문장가로 알려진 최립의 시문을 근거로 허준의 출생 연도를 1539년으로 확정한다. 또 허준이 양천 출생이라는 문서나 사료 등이 발견되지 않은 가운데, 허준의 생모인 영광 김씨와 외삼촌이 전라도 광주와 장성 등지에서 활동한 사실을 근거로 허준이 전라도에서 태어났으리라고 추정한다. 1927년에 간행된 ‘장성읍지’에는 장성이 본향인 유명 인사들 명단에 허준의 이름이 들어 있기도 하다.
허준은 무과 출신으로 지방관을 두루 거친 부친 허론과 역시 무인 가문의 서녀로 허론의 첩이 된 어머니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서자라는 신분 때문에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던 그는 어려서부터 경학과 역사를 공부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의학을 택했고 젊은 시절부터 명의로 이름을 떨쳤다. 허준은 서른살이던 1569년 왕실의 약을 조제하는 내의원 의원이 되어 죽을 때까지 어의로 활동했다. 그를 내의원에 천거한 이는 호남 사림을 대표하는 인물로 선조 대에 정승을 지낸 미암 유희춘이었다.
해남 출신인 유희춘이 선조가 즉위한 1567년부터 11년에 걸쳐 쓴 ‘미암일기’는 조선 시대 개인이 쓴 일기 중 가장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허준에 관한 서술이 그 어떤 자료보다 풍부한 것이 바로 이 기록이기도 하다. 이 글에 따르면 허준은 유희춘의 가족과 지인들을 치료하는가 하면 다양한 책을 그에게 선물하는 등 그와 매우 밀접하게 지냈다. 허준이 ‘동의보감’에서 수많은 약재들을 조선의 이름으로 명명한 데에는 유희춘의 실증 학풍의 영향이 보인다고 김호 교수는 짚는다.
1590년 허준은 왕세자(후일 광해군)의 병을 치료한 공로로 정3품 당상관(통정대부)의 작위를 받았다. 서자 출신인데다 기술직인 의관으로서는 처음이었다. 선조는 1596년 허준을 불러 당대 최고 의서를 편찬할 것을 명령했고 이듬해에는 의서 500권을 내주며 편찬을 마무리하도록 독려했다. 오랜 준비와 집필을 거쳐 1610년에 마침내 완성한 ‘동의보감’의 가장 큰 의미는 중국과 다른 조선의 의학을 표방했다는 데에 있다. 허준은 중국 의학을 북의와 남의로 구분하고, 조선의 자연환경에 맞춘 자신의 의학을 ‘동의’로 새롭게 정립했다. 그는 조선의 유구한 향약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중국의 새로운 의학 지식 역시 받아들임으로써 특수성과 보편성의 조화를 꾀했다.
수많은 약재의 명칭을 한글로 부기해 민간에서 활용하기 쉽도록 정비한 것이야말로 ‘동의보감’의 가장 중요한 성취였다. 그 전까지는 중국 의서에 적혀 있는 약재의 한자 이름이 조선 땅에 나는 어떤 식물 또는 동물을 가리키는지를 알지 못해서 백성들이 큰 곤란을 겪었다. 허준은 중국 의서에 수록된 본초명과 조선의 향약명을 모두 확인하여 조선의 산물로 대체할 수 있도록 약재의 한자명과 한글 이름을 아울러 썼다. 명(名)과 실(實)의 상부였다. 악성 종기로 인한 발열과 갈증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던 인동초가 겨우살이덩굴이라든가, 인후통 치료제인 여실이 붓꽃 열매라는 사실 등을 조선 백성들이 비로소 알게 되었다.
‘동의보감’ 앞부분에는 ‘신형장부도’라는 인물도가 나온다. “하늘을 상징하는 머리와 땅을 나타내는 몸, 이 둘을 척추가 연결하여 천지의 기운이 순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자연을 닮은 인간’과 ‘자연을 따르는 삶’의 중요성을 형상화한 것이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의보감’은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도덕성을 완전하게 결합함으로써 심신의 절제와 조화를 자연스러운 삶의 방법으로 제시”했고, 그런 점에서 “16세기 후반 조선의 ‘성리학 기획’이 이룩한 주요 성과로 남았다.” 평전의 부제인 ‘네 얼굴의 유의(儒醫)’는 허준과 ‘동의보감’의 이런 성리학적 바탕을 강조한다.
허준이 ‘동의보감’ 편찬을 마치고 간행을 기다리고 있던 1612년, 함경도와 강원도를 필두로 전국에 역병이 돌아 수천의 백성들이 사망했다. 이에 광해군은 이듬해 봄 허준을 불러 역병의 예방과 치료법을 담은 의서를 만들어 전파하도록 명했다. 이미 일흔이 넘은 나이였음에도 허준은 신속하게 ‘신찬벽온방’을 간행해 배포했고, 이어 가을부터 유행한 중국발 역병의 치료서 ‘벽역신방’도 완성했다. 이 의서들에서 허준은 미신이나 주술을 가급적 배제한 경험적·합리적 태도를 보였으며, 역병의 예방과 치료에서 사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평전을 준비했다는 지은이는 역병 유행에 맞서 환난상휼의 덕목을 부각한 허준에게서 우울한 코로나 시국을 이겨낼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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