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정보라 “윤석열 정부에 C- 줍니다, 높지 않냐고요?”

임인택 기자 2024. 2. 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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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투쟁·연애·돌봄의 삶 함축
첫 자전적 SF 단편집 출간
공포·분노의 시대 문학적 각오
‘아무튼, 데모’ 에세이도 곧
“노년에도 데모하고 싶다”
자신의 연애, 투쟁, 돌봄의 일상을 ‘SF’의 그릇에 담아낸 정보라 작가. 수록 단편 ‘개복치’는 장르문학에 대한 편견 없이 ‘저주토끼’의 주요 독자층이 된 어린이청소년들에게 헌사하는 듯한 다정함이 묻어 있다. ‘저주토끼’는 2022년 한해 국외에서 가장 많이 팔린 국내 문학작품이 됐다. 래빗홀 제공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정보라 지음 l 래빗홀 l 1만6800원

분노와 저주, 투쟁과 복수의 작가 정보라(48)에게 묻고 들었다.

“지난 2년간 가장 큰 공포는 이태원 참사였어요. 왜 특정 연령대 사람들을 계속 죽이지, 원한이 있나…. 직접 겪은 일로는 지난달 전장연 기자회견(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혜화역사에서 중증장애인 노동자 해고 철회를 촉구) 때였어요. 저도 참가했는데 지하철 보안관들이 벽쪽으로 계속 밀어붙이더라고요. 경찰과 몸싸움하기는 2015년 이후 처음이었는데, 폐쇄된데다 휠체어 탄 동지들과 제 뒤엔 수녀님들이 있었는데 방패 같은 거로 누르면서 밀고 들어오니까 ‘이렇게 질식사시키려는 건가’ 정말 너무 무서웠어요.”

정 작가가 소설집 ‘저주토끼’로 2022년 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암이 재발한 남편에 이어, 시어머니가 쓰러져 나란히 수술대에 올랐다. 이번 신간에 작가는 “새롭게 사랑하게 된 가족을 순식간에 모두 잃을까 몹시 두려웠다”(단편 ‘상어’)고 고백했다.

비정규교수노조 소속 대학강사 전력의 작가에게 창작의 동력은 밝혀온바 “분노”다. 하지만 분노의 저 바닥엔 ‘공포’가 도사린다. 취미가 “데모”라는 너스레도 그가 누구보다 떨고 우는 사람이기 때문일 거다.

―언젠간 저 일들도 작품에 반영이 되겠군요?

지난 한해 데모 현장만 서른번가량, 21년까지만 해도 하루 두 곳의 투쟁 현장을 찾아 목소리를 보태기도 했던 작가가 말했다. “제가 굉장히 화가 났기 때문에 반영이 될 겁니다.”

이번 작품―그렇다, 당연 에스에프(SF)다―에선 학자 출신 노동운동가인 남편, 아들이 “교수가 될 줄 알았는데 빨갱이가” 됐다 타박하는 포항 죽도시장 상인인 시어머니, 지척에서 사라지는 해양생물종과 인간종이 주인공이 된다. 공포와 분노의 근원을 사유하고 감각시키려는 집요한 방식으로, 이제껏 당도한 가장 내밀한 영역에서 ‘그렇게 데모하는 작가가 된다’를 말하려는 듯하다.

―가정사를 쓰기 부담되진 않았나요?

“이제 대학교(강사)를 그만둬서 잘릴 일이 없기 때문에 별로 부담은 없었어요. 남편은 본인이 주인공이시라고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고 동료분들한테 책도 나눠주고…. 주요 등장인물들이 괜찮다 하니 괜찮습니다.”

사라지는 종들의 사라지지 않으려는 이야기에 출판사는 “첫 자전적 SF”라고 띠지를 둘렀지만, 이 기사에선 달곰하니 연애 SF, 애틋하니 돌봄 SF, 어쨌건 맞서 싸우자 하니 사회파 SF란 말을 붙여본다.

단편 ‘문어’가 시작이다. 강사법 취지와 달리 자행되던 대학강사 해고 사태에 맞서 천막농성 중이던 노조 ‘위원장님’과 마찬가지 대학의 “천민”이 아닌 “천직”의 교육 연구자로 “사라지고 싶지 않았”던 ‘나’가 주인공이다. 농성 중 불쑥 나타난 외계 문어를 처치하는 남녀의 모습은 비린내 나는 학교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처지보다 더 기괴할 것도 코믹할 것도 없다. 둘은 그렇게 사랑하고 결연하고 투쟁을 다짐한다.

러시아 정부의 야심에 해저 가스관 건설용역으로 사기 이용되는 ‘대게’, 질병 치유 목적으로 착취당하는 ‘상어’, 외계 생명체와 인간종의 감응이 청소년용, 성인용인 양 환상과 고통을 수반하여 각기 펼쳐지는 ‘개복치’와 ‘해파리’, 이들 생명체조차 떠나고 마는 지구의 위기 앞 두 남녀의 또 다른 다짐(‘고래’)까지 소설은 연작이 되어 말 그대로 투쟁에서 투쟁까지를 한 축 삼는다.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겠다. 자본의 노동자 탄압, 독재와 공포정치의 실체, 러시아의 침공,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출 등이 소설 안에서 교직되고 급기야 “절망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포기한” 사람들이 되어 “더 나은 것을 추구하고 갈구하는 사람들을 질투하여 스스로 탄압”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소설은 자주 능청스럽고 웃깁니다.

“데모 현장에 가면 어이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져요. 당시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보면 우습고 그래요. 갑자기 문어가 나와 충격받고 약간 실성해 웃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거든요.”

―데모는 데모의 시대를 가리키는 일인데, 지난 2년 정부를 평가하신다면요.

“시 마이너스(C–)입니다.”

—낙제점은 아니네요?

“에프(F)를 맞으면 꼭 재수강하려고 들거든요. 재수강을 허용 않는 최저선이 보통 C–입니다. 오늘(1월30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하셨더군요. 정부가 사람은 죽이고 책임은 지지 않겠다 아닌가요. ‘노란봉투법’도 거부했고요. 장애인 복지예산 삭감이나 장애인은 가두겠다는 기조도 굉장히 반인권적입니다.”

낙제점은 김건희 여사에게 일찌감치 주워졌던 모양이다. 석박사 논문의 표절 의혹을 비판했던 연구자 그룹에 정 작가도 있었다. “엄청 심하게 비판했거든요. 제가 학부에서도 표절과 인용 차이를 가르쳤는데 (논문을 쓰겠다는 이가)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죠. 그분 강사도 하셨잖아요.”

정보라 작가의 가방. 다양한 운동 구호가 적힌 배지들이 달려 있다. 래빗홀 제공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엔 경북 구미시에 있는 외국계 투자 회사들 상대의 부당해고 투쟁 현장 등도 재현되고 있다. 한 곳에선 공장청산 반대 고공농성 중이다. 지난달 한파가 닥칠 때부터였다. “제가 너무 조급해지기 시작해서… 조급해지면 안 되는데, 너무 걱정이 돼요.” 소설가는 비관할지언정 소설은 비관하지 않는 듯하다. 실상, 등 뒤로 울고 치 떨고 앞으로 웃고 수다 떠는 작가의 태도 그대로다.

저항이 왜 중요한지 묻자 작가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완전하지 않은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의 정책과 자본주의 구조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제동을 거는 수단이자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변화에 대한 (시민의) 효능감이 있어요. 그걸 믿을 뿐만 아니라 경험으로 확인하고 우린 조금 더 안전하다고 느껴요.”

이 말이 가장 농밀해진 소설 속 문장이라면 바로 이것, 위기에 내몰린 외계 해양생물체들이 주인공에게 전해온 메시지(‘고래’)다. “세상이 맥박 치고 우주가 진동하는 그 파동을 통해서, 물속을 질주하던 빛나는 존재들은 서로에게 외쳤다. 저항하라.”

—하지만 대개 패배하고 허무해지질 않습니까?

“성과를 내지 못해도 함께한 사람들이 그대로 있어요, 또 다른 방법도 생각해내죠. 이미 시위집회라는 굉장히 에너지가 큰 활동을 무리 없이 해냈다는 자체의 효능감도 있고요. 계속 효능감을 내놓을 때까지 데모해야죠.”

남편의 재차 입원을 앞둔 지난달 30일 밤 1시간여 전화 인터뷰에서였다.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 출신 임순광씨가 그의 남편이다. 소설 속 ‘여주’는 ‘남주’를 지켜 ‘남주’에 기대는 자다. “의존적 아니냐고요? ‘내 남편 내가 사랑하겠다는데’라고 답변드리고 싶습니다.”

정보라 작가가 배우자 임순광씨와 ‘팀 저주토끼’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자세를 취했다. 지난 2022년 7월. 포항/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위 기사 속 표현 “강사를 대학의 ‘천민’으로 실상 법제화한 ‘강사법’에 맞서 소속 대학에서 천막농성 중이던”은 “강사법 취지와 달리 자행되던 대학강사 해고 사태에 맞서 천막농성 중이던”으로 바로잡았습니다. 강사법이라 불린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강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추진되었으나 대학이 이를 악용하는 상황이 설명된 데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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