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시니어 독자의 심장을 뛰게 하다

한겨레 2024. 2. 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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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얇아야 손이 가는 모양이다.

베스트셀러 상위권 목록에 올라 있는 책들 가운데 100쪽 내외의 얇은 책들이 눈에 띈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란 아리송한 제목의 책으로, 지난 1월17일 출간되자마자 대단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 두근거림. 옛날엔 사랑, 지금은 병이라뇨. 빵 터졌습니다" "진짜 웃프네. 누구나 나이 들어간다. 지혜롭고 밝고 유머러스하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등, 온라인서점과 소셜미디어에는 책을 먼저 읽은 독자들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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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노인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담다
전국유로실버타운협회 지음, 이지수 옮김 l 포레스트북스(2024)

확실히 얇아야 손이 가는 모양이다. 베스트셀러 상위권 목록에 올라 있는 책들 가운데 100쪽 내외의 얇은 책들이 눈에 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간결한 단어로 간결한 문장을 쓰고, 이를 조합해 간결한 장면을 만들어나간다”라고 극찬하는가 하면, ‘단어 하나도 낭비하지 않는 작가’라는 평가를 듣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 두 권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과 ‘맡겨진 소녀’는 100쪽 내외의 얇은 책이지만 밀도감 있는 전개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얇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얕보면 안 되는 작품들이다.

100쪽가량의 얇은 책인데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 한 권 더 있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란 아리송한 제목의 책으로, 지난 1월17일 출간되자마자 대단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 두근거림. 옛날엔 사랑, 지금은 병이라뇨. 빵 터졌습니다” “진짜 웃프네. 누구나 나이 들어간다. 지혜롭고 밝고 유머러스하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등, 온라인서점과 소셜미디어에는 책을 먼저 읽은 독자들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은 노인들의 세상을 유쾌하게 담아낸 일본 센류(짧은 시)를 번역한 시집이다. 센류는 ‘5-7-5’의 총 17개 음으로 된 일본의 정형시 가운데 하나로, 책에는 2001년부터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의 주최로 진행되고 있는 ‘실버 센류’ 공모전에서 당선된 여든여덟 수가 소개된다. 정형시지만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글자 수 규칙이 파괴됐고, 그래서 사실 시라기보다는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짧은 글처럼 읽힌다.

책을 펼치면, 초고령 사회의 단면과 노년의 애잔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문장들을 만나게 된다. “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요시무라 아키히로, 73세), “자명종/ 울리려면 멀었나/ 일어나서 기다린다”(야마다 히로마사, 71세), “쓰는 돈이/ 술값에서 약값으로/ 변하는 나이”(오카타케 마사후미, 72살), “이름이 생각 안 나/ ‘이거’ ‘저거’ ‘그거’로/ 볼일 다 본다”(시바타 도시코, 51살), “연상이/ 내 취향인데/ 이제 없어” (야마다 요우, 92세), “손을 잡는다/ 옛날에는 데이트/ 지금은 부축”(가나야마 미치코, 76세)…. 정감 있는 삽화와 일본 원서 편집을 그대로 가져와 우리와는 반대로 책장을 넘기며 읽게 한 점도 색다른 매력으로 느껴진다.

한동안 출판인들 사이에서 ‘시니어 출판’이란 말이 유행하며,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노년 세대를 위한 책을 발굴해 소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후 ‘지혜롭게’ ‘유쾌하게’ ‘우아하게’ ‘품위 있게’ ‘행복하게’ ‘가치 있게’ ‘건강하게’ 등, 현란한 형용사를 앞세운 온갖 ‘나이 드는 법’에 대한 책들이 쏟아졌다. 중년 이후 또는 노년의 삶을 재치있게 그려낸 소노 아야코나 사노 요코와 같은 일본 여성 작가의 에세이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책들 가운데 노년 세대의 감성을 건드린 책들은 많지 않았다. 시니어 시장에 정작 시니어는 빠져 있었던 셈이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은 어떨까? 교보문고가 분석한 구매자 분석을 살펴보면, 구매자 가운데 50대가 30.4%, 60대 이상이 23.0%로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노년 세대가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다. 노년이라고 감성이 사라지지 않을 터, 계속해서 노년의 감성을 자극하는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길 기대해본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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