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싸움의 뒷자리, 여전히 저들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뒷자리
어떤 일을 한 뒤의 흔적
희정 지음 l 포도밭 l 1만6000원
제 존재를 깔아뭉개는 거대한 힘에 맞서 앞자리에 버티고 서서 악을 써야만 비로소 그동안 무심했던 세상의 눈에 들 수 있다. 농성장이 철거되고 구호가 잦아들면 잠시나마 눈길을 줬던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냉정하게 눈길을 거둘 것이다. 그럼 싸움은 과연 끝난 것일까.
‘기록노동자’ 희정은 새 책 ‘뒷자리’에서 “싸움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흔적”을 뒤쫓는다.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해온 사람으로서, 못내 “내가 쓰는 글이 한순간 필요에 의해 소비된다는 생각을 지우진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이 벌어졌던 밀양, 미공군 폭격장 반환 투쟁이 있었던 매향리, 주민들이 이주 투쟁을 벌였던 월성원전 최인접 마을 등 치열한 싸움이 있었던 현장에 ‘여전히 남은 사람들’을 다시 찾았다. 또 롯데호텔 성희롱 집단소송 사건(2000년)과 ‘스쿨미투’, 114 한국통신 안내원들의 산재 인정 투쟁(2001년)과 콜센터 노동 등 20년 터울의 사건을 하나로 이었다. ‘노년 노동’, ‘이주 노동’, ‘여자 노동’ 등 “더 보이지 않거나 더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찾기도 했다.
뒷자리에서 지은이가 만난 것은 “싸움은 분명 끝났는데 무언가를 붙들고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핵발전소의 위험을 지역의 삶터에 전가하고 거기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퍼올리기 위해 또다른 지역의 삶터에 거대한 송전탑을 짓는다.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을 막으려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밀양에도, 2014년 끝내 농성장을 밀어내고 송전탑이 들어섰다. 반대 운동을 막으려 한전이 동원한 보상금에 “동네가 박살이 났고 쪼가리가 났”지만, 송전탑이 들어선 뒤에도 앞자리에 섰던 사람들은 “싸움을 끝낼 수도, 질 수도 없다. 이곳은 그네들의 삶터였고, 사는 일엔 끝이 없”기 때문이다. 2013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밀양에 왔다가 송전탑 반대 대책위 활동가가 됐고, 지금도 밀양에 살고 있는 남어진은 지금도 자신이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여전히 그 공간 안에는 그 송전탑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100세대 정도라 한다)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남어진의 말대로 그건 ‘소멸해가는 싸움’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지은이는 그 소멸은 ‘외침이 멈췄을 때’가 아니라 ‘응답이 더는 오지 않을 때’에 찾아올 것이라 새긴다.
월성원전 최인접 마을에서 살다가 핵발전소의 위험을 깨닫고 ‘이주 투쟁’을 벌여온 사람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송전탑은 세워지기 전에 막아보려 했으나 세워졌고, 원전은 세워진 지 수십 년이 되어서야 정체를 알았다.” 월성원전 반경 1킬로미터에 있는 나아리 마을 주민들 몸에선 다른 지역보다 두 배 넘는 수치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주민들은 이주를 시켜달라 요구하고 한수원 상대로 집단 소송도 벌였지만, 2023년 8월 부산고등법원은 원전과 암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며 한수원의 손을 들어줬다. 이제 열 가구 남짓밖에 안 남은 이주대책위에서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분희는 말한다. “저 사람들 마음대로 할 수 없게 우리가 버텨주는 거잖아.” 미공군 폭격장이 되어 포탄을 들이부었던 매향리는 또 어떤가. 끈질긴 투쟁 끝에 2005년 겨우 폭격장이 폐쇄됐지만, 포탄을 수거하고 갯벌을 정화하는 일은 마을 주민들이 오롯이 떠안아야 했다. 이곳을 평화와 생태를 기리는 기념 장소로 만들자는 주민들의 바람은 야구장 건설과 레저 산업에 가로막혔다. 매향리 평화역사관 지킴이 전만규는 말한다. “서서히 가라앉는 거죠.”
어떤 싸움은 20년의 터울을 두고 다른 모습이 되어 이어진다.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의 여파 아래 정리해고와 아웃소싱이 만연했던 2000년, 인력감축에 저항해 롯데호텔 노조가 벌인 파업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대자보를 붙여 고발한 직장 내 성희롱 문제가 불거졌다. 270명이 회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에도 나섰고, 2년 뒤엔 ‘사업주의 지배 관리’ 책임을 인정하는 승소 판결을 받아낸다. 그러나 판결 때의 원고는 단 40명. 가뜩이나 기업이 결혼·임신·출산 등을 핑계 삼아 여성 노동자들을 쉽게쉽게 갈아치우는 판에, 성희롱 사실을 고발했던 여성 노동자가 사무실에서 받을 건 불이익밖에 없던 것이다. “집단소송에 따른 불이익을 견디지 못하고 여성들이 직장을 떠났지만, 동시에 롯데호텔은 여성이 오래 근무하기에 상대적으로 괜찮은 직장이 됐다.” 지은이는 이들의 싸움을 학교 내 만연한 교사들의 성폭력을 드러내고 바로잡고자 싸운 2018년의 ‘스쿨미투’와 잇는다.
공기업 한국통신에서 114 안내를 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1990년대 중반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경견완증후군이 산업재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벌였고, 2001년 인력감축 시도에 맞서 본사 점거 농성을 벌였다. 그들이 싸운 것은 그들의 노동을 ‘잉여’로 보는 세상이었고, 어떤 측면에서 그 세상은 지금도 여전하다. 지은이는 “직고용-자회사-도급·협력업체-아웃소싱 업체-(불법파견 논란 후) 자회사로 이동하는 흐름”을 짚으며, 오늘날 ‘8조원 시장’이라 할 정도로 커졌지만 해고는 더욱 쉬워진 콜센터 노동 현장을 연결한다. 공기업도 아닌, 대중도 그 이름을 잘 모르는 작은 회사들에서 여전히 자신의 노동을 제대로 인정받기 위한 콜센터 노동자들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싸워 얻은 결과로 남기고 싶은 게 참 많았다”는 한국통신 114 노동자의 말은 “고용불안이 상수인 콜센터 업계에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는 콜센터 노동자의 말로 이어진다. 이밖에 지은이는 대구 성서공단의 노년 노동, 광주 고려인 마을의 이주 노동, ‘아가씨 노동’이라 불리는 경리 노동 등 “세상이 뜨겁게 생각해주지” 않는 노동의 현장들을 살핀다.
“싸움은 분명 끝났는데 무언가를 붙들고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로부터 지은이가 찾아낸 것은 “큰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작은 후회를 감수하며 사는 사람”이다. 언제나 “더 보이지 않고, 더 빠르게 잊히고, 더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있고, 그 목소리는 더이상 ‘모르고 사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그래서 “어떤 흔적을 뒤적여도, 아무리 오래된 사건과 만나도, 여전히 움직이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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