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과학자들이여, 정치에 구걸 말고 청구서를 내밀어라/유용하 문화체육부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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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인 사람이 20㎏ 감량을 목표로 한다고 하자.
과학기술 현장을 찾아가서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아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거나 훈계질이나 하는 정치꾼 대신 연구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알고 세계적 연구를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과학자들과 마주 앉아 제대로 된 대화를 하는 '과학자 정치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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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인 사람이 20㎏ 감량을 목표로 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 사람이 느닷없이 100㎏까지 살을 찌운다. 이 상황에서 20㎏을 빼 80㎏이 되면 다이어트를 한 것인가, 하지 않은 것인가.
지난해 하반기 느닷없이 튀어나온 ‘과학계 카르텔’ 발언은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후려치기로 일단락됐다. 최근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R&D 예산 삭감은 예산의 합리적 운용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면서 내년부터 다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예산을 수년 전 수준으로 후퇴시킨 다음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다시 지난해 수준으로 회복하면 그것은 늘어난 것으로 봐야 할까.
R&D 예산 삭감이 몰고 올 파국에 대해 과학기술계가 끊임없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해라거나 지나친 기우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결국 얼마 전에는 미국이 유인 달 탐사 프로그램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의 큐브위성을 달에 보내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거절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가 하면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나 대학 연구 현장에서는 인건비 부족으로 연구원들을 내보내야 할까를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새로운 연구를 위해 필요한 기자재 구매도 여의찮다고 한다.
과학기술계는 이번 사태가 과학계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창구가 없어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고 있다. 사실 그동안 한국 과학자들은 정치에 대해 혐오감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었다. 딸깍발이 선비처럼 과학자는 정치 같은 흙탕물에 발을 들이지 말고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일은 과학과 정치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갖는지 과학자들 스스로 깨닫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볼 수 있듯 새로운 발견과 발명은 과학기술인이 하지만 사용은 정치인의 손에 달려 있다. 멀리 외국의 사례를 볼 것도 없다. 1960~70년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비롯해 많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설립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정치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의지 때문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과학자들도 이제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거두고 좀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나서야 할 때다. 모두가 한국의 발전이 과학기술 덕분이고, 과학기술이 세상을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는 만큼 정치권의 선의에 기대지 말고 이젠 당당히 청구서를 내밀어도 된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두 달여 앞둔 요즘은 그야말로 ‘정치의 계절’이다. 평소에는 목에 깁스를 했는지, 공복이라는 위치를 잊고 국민을 불가촉천민 보듯 하던 사람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을 입에 달고 다니며 굽신거리는 유일한 때다. 서민적임을 보여 주려 툭하면 시장통에서 어묵, 호떡, 떡볶이를 쑤셔 넣는 것을 하도 봐서 그 음식들을 직접 먹은 것처럼 물릴 지경이다.
과학기술 단체들도 이맘때가 되면 과학기술계 인사를 국회에 입성시키기 위해 각 당에 비례대표 상위 후보자 공천을 요구하고 적임자를 추천하는 등 물밑 작업에 바쁠 것이다. 연구 현장보다는 정치권에 기웃거렸던 이들보다는 제대로 된 연구를 해본 과학자들이 추천되고, 국회에 진출해 한국 과학 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한다.
과학기술 현장을 찾아가서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아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거나 훈계질이나 하는 정치꾼 대신 연구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알고 세계적 연구를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과학자들과 마주 앉아 제대로 된 대화를 하는 ‘과학자 정치인’을 보고 싶다.
유용하 문화체육부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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