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삭감에 멈춘 ‘행복’…정부 지원 끊긴 ‘행복나눔이사업’
농협, 자체예산 사업 지속 방침
기초생활수급자 등 가사서비스
대상자 만족도 높아 재개해야
“평소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제게 봉사자분들은 가사도우미이자 말동무예요. 갑자기 올해부터 안 오신다니 당황스럽고 많이 서운하네요.”
전남 고흥군 과역면에 사는 이창명씨(56)는 사고로 오른손을 잃어 청소 등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데 불편함이 크다. 혼자 살고 있는 그에게 한달에 한번 찾아오던 팔영농협 행복나눔이 봉사자는 몇 안되는 친구였다. 하지만 5년 넘게 봉사자와 인연을 이어왔던 이씨는 올해부터 이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됐다. 행복나눔이 지원 대상자에서 제외돼서다.
사업이 축소되면서 농협은 지원 대상자를 조합원으로 한정했다. 이씨는 “예전엔 농사도 짓고 조합원으로 활동했지만 몸을 다친 뒤 가진 땅도 다 처분했다”며 “지금까지 받은 도움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한숨 쉬었다.
농촌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행복나눔이사업이 정부 예산 전액 삭감으로 중단 위기에 처했다. 행복나눔이는 농촌지역에서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을 직접 챙기는 특화서비스다.
농촌에 거주하는 만 65세 이상 어르신,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등 취약가구를 방문해 취사·세탁·청소·목욕보조 등의 가사서비스를 제공한다. 영농활동과 관련 없이 실제 농촌에 거주하면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지난해 기준 16억5300만원(국고 70%, 농협중앙회 30%)이 지원돼 농협이 사업을 시행하며, 농가주부모임 등 농협 여성조직 회원들이 소정의 활동비를 받고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하지만 올해 국고 지원이 전액 삭감돼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농협은 일단 자체 예산으로라도 사업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3월 중엔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고 지원이 중단된 상황에서 일부 지역농협이 먼저 나섰다.
지난해까지 연평균 2500만원을 지원받았던 팔영농협은 자체 예산 2000만원을 행복나눔이사업에 배정하고 1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팔영농협은 주부대학동창회원 90여명이 봉사단으로 활동하며 20년 넘게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다만 올해 예산이 삭감되면서 지원 대상이 64명에서 55명으로 줄었다.
김성임 팔영농협 여성복지계 차장은 “자체 예산으로 운영하게 돼 비조합원은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며 “비조합원 중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분이 많은데 갑자기 대상을 줄이려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른 농협은 대부분 올해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지역 한 농협 관계자는 “정부 지원을 받는 위탁사업이어서 지역농협이 혼자 진행하기엔 어려움이 많다”고 밝혔다.
행복나눔이사업이 지속될 수 있게 정부가 지원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봉사자와 지원 대상자들은 현장 만족도가 높은 만큼 국고 지원을 재개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15년 동안 봉사를 한 박수복씨(72·과역면)는 “지원을 나가면 몸이 불편해 한달 내내 청소도 못하고 봉사자들을 기다리는 어르신들도 계신다”며 “봉사자들은 본인에게 지급되는 활동비까지도 따로 모아뒀다 어르신들에게 쓰는데 나라에서 예산 지원을 끊는 게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지원 대상자인 김홍자씨(83·과역면)는 “여동마을에 15가구가 사는데 이 가운데 11명이 나처럼 혼자 사는 노인”이라며 “봉사자가 오는 날이면 같이 이야기 나눌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마당을 서성이며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지원을 더 늘려 마을의 다른 노인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행복나눔이사업에 배정된 국고 지원액은 11억5700만원이다. 18조원이 넘는 올해 전체 농업예산은 물론 수조원에 달하는 각종 사회간접자본(SOC)예산과 비교하면 티끌 만큼도 안되는 금액이다. 하지만 그 적은 예산이 누군가에겐 소중한 도우미이자 말동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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