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원 부지를 ‘의료시설’ 지정… 인제대는 “재산 침해”
서울 중구 도심에 있는 인제대 서울백병원 부지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명동 인근 3127㎡(약 950평) 땅이다. 인제대는 작년 8월 경영난을 이유로 병원 문을 닫고 부지를 팔겠다고 내놓은 상태다.
서울 중구청은 지난달 11일 주민 설명회를 열고 이 땅을 ‘종합 의료 시설’ 부지로 지정하는 내용의 ‘도시관리계획안’을 발표했다. 종합 의료 시설 부지로 지정되면 해당 부지에 종합병원만 지을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인제대는 즉각 입장문을 내고 “과도한 사유재산 침해”라고 반발했다. 이 땅은 일반 상업 지역으로 인제대가 소유한 사유지이기 때문이다. 인제대 관계자는 “조만간 서울시도 항의 방문할 계획”이라고 했다.
◇”도심 의료 공백” vs “근처 종합병원 4곳”
중구는 “도심 의료 공백이 우려돼 백병원 부지에 또 종합병원이 들어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신 부지 일부는 근린 생활 시설로 지정해 수익성 높은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을 허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이 부지를 근처 명동과 엮어 외국인 의료 관광객을 위한 ‘K의료 센터’로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서울백병원은 1941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현대식 민간 병원이다.
중구에 따르면, 백병원 폐원으로 중구 내 병상은 총 1286개에서 1128개로 158개(12%) 줄었다. 이에 따라 인구 1000명당 병상이 9.5개에서 8.4개로 감소했다. 중구 내 종합병원도 이제 국립중앙의료원 1곳밖에 남지 않았다.
인제대 측은 “차로 10분 정도 거리인 반경 2㎞ 안에 서울대병원, 강북삼성병원 등 종합병원이 4곳이나 있고, 병상은 3340개에 달한다”고 맞섰다. 여기에 국립중앙의료원도 2028년까지 병상을 505개에서 760개로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줄어든 백병원 병상보다 더 많은 병상이 새로 생긴다는 이야기다.
◇의료 수요 두고도 이견
백병원 주변의 의료 수요를 두고도 양측 주장이 엇갈린다. 인제대는 “의료 수요가 거의 없기 때문에 누적 적자가 1745억원에 달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폐업 직전 병상 가동률이 60% 수준에 불과했다고 한다.
반면에 중구청 관계자는 “중구에는 주민등록 인구보다 직장인이나 관광객 등 유동 인구가 2배 이상 많다”며 “단순 인구만 따져선 안 된다”고 했다. 중구의 주민등록 인구는 12만명밖에 안 되지만 유동 인구를 더하면 의료 수요가 50만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또 청계천, 세운지구 등의 재개발·재건축으로 2040년쯤이면 주민등록 인구도 21만명으로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울백병원 폐원을 두고 일각에선 “부지를 팔아 시세 차익을 올리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인제대 관계자는 “학교 법인은 부지를 팔아도 법인 내 공익 사업에만 쓸 수 있다”며 “그동안 서울백병원의 적자를 다른 백병원들이 겨우 메웠는데 부지를 팔아 다른 백병원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백병원 “다른 병원들도 죽는다”... 중구 “세운상가도 공원으로 지정”
인제대는 전국에 서울백병원, 상계백병원, 부산백병원, 일산백병원, 해운대백병원 등 5곳을 운영하고 있다. 인제대에 따르면, 2021년 286억원이었던 다섯 병원의 수익은 2022년 적자로 돌아섰고 2023년에는 적자 규모가 270억원으로 커졌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백병원지부는 “나머지 네 병원의 생존을 위해서도 서울백병원 매각이 절실하다”고 했다.
과도한 사유재산 침해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중구청은 “공공 목적상 필요한 경우 땅 용도를 지정할 수 있다”며 “사유지인 세운상가 일부도 공원으로 지정해 개발한 사례가 있다”고 했다.
중구청은 이 부지 가격을 약 1200억원 정도로 추산한다. 평당 1억2000만원 수준이다. 신축할 경우 총사업비는 3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인제대 관계자는 “무조건 종합병원을 지어야 한다는데 누가 땅을 사겠느냐”고 했다.
한편, 서울시 관계자는 “백병원 부지가 의료 기능을 유지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 안팎에선 수도권 대학 병원을 유치하는 방안, 서울시가 매입해 공공 의료 시설을 포함한 복합 단지를 조성하는 방안 등도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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