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가 무기징역이라니…” 유족들 통곡

성남/구아모 기자 2024. 2. 2.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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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역 흉기 난동사건’ 1심 선고
법원 “사형엔 신중한 판단 요구”
작년 8월 발생한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에서 숨진 이희남씨의 두 딸이 지난달 28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메모리얼파크에서 어머니를 추모하고 있다. 이 사건의 범인 최원종은 1일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태경 기자

법원이 1일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피고인 최원종(23)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최원종은 작년 8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 AK플라자 부근에서 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한 뒤 백화점에 들어가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으로 2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2부(재판장 강현구)는 “이 사건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대중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를 일으키게 했다”며 “여러 증거에 비춰보면 공소사실은 유죄로 인정되고, 재범 위험성도 크다”고 했다. 검찰은 최원종에게 사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의견은 이해할 수 있으나, 매우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판결 선고 직후 법정은 유족들의 통곡 소리로 가득 찼다. 고(故) 이희남씨(사건 당시 65세)의 유족들은 “사람들이 일상을 지내는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벌어졌던 이 범죄가 끝까지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사전에 계획된 잔인한 범행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범죄자는 살아 있는 세상이 참으로 원망스럽다”고 했다.

고 김혜빈(당시 20세)씨의 유족들은 “‘생명권을 박탈하면 안 된다’는 무기징역 선고를 들었을 때 너무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딸은 왜 죽었는지, 누구 때문에 죽었는지…”라며 “저희는 또다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사건 피고인 최원종의 범행으로 14명이 죽거나 다쳤다. 이 중 남편과 외식을 가던 이희남씨와 학원 아르바이트 중 잠시 편의점에 들렀던 새내기 대학생 김혜빈씨가 숨졌다.

지난달 28일 이희남씨의 두 딸과 손녀딸, 사위는 이씨의 유골이 안치된 경기 성남시의 한 납골당을 찾았다. 유족들은 “세상을 떠난 우리 엄마는 ‘돈은 저금이 되지만 행복은 저금이 안 되니, 행복을 저금하지 말고 즐겁게 삽시다’ ‘내가 좀 손해 보면 어때, 남들한테 손해 보게 하지 말고 살자’ 그런 말들을 늘 하는 분이었다”고 했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분당 주민 상당수가 매일 오가는 길이었다. 이 공간을 지날 때마다 유족들은 가족을 떠나보낸 아픔을 떠올리게 된다고 했다. 이희남씨의 두 딸은 “엄마의 죽음이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며 “그때 이후 길에 누가 뛰어다닐 때마다 혹시나 ‘무차별 칼부림 범죄’일까 뒤돌아보게 됐고, 산책하는데 열쇠를 든 사람을 흉기를 들고 있는 것으로 착각해 신고할 뻔했다”고 했다. 만 세 살이 갓 지난 이씨의 손녀딸은 자신을 종종 유치원에 데려다 주던 할머니가 숨진 사실을 모른다고 한다. 이씨의 딸은 “’엄마, 요새 왜 할머니는 나 안 데리러 와?’라고 묻는다”며 “할머니는 아주 멀리, 오랫동안 여행을 떠나서 당분간 볼 수 없다고 답해준다”고 했다.

남편 이모(66)씨는 “아내는 대학 새내기 때 첫눈에 반한 첫사랑이자 끝사랑”이라고 했다. 딸들은 “아버지·어머니는 늘 손을 꼭 붙잡고 다니던 소문난 잉꼬부부”라며 “세 돌 지난 아이가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손잡고 다닌대요, ‘얼레리꼴레리’ 하며 놀릴 정도로 서로에 대한 사랑이 넘쳤던 부모님”이라고 했다.

이희남씨는 세상을 떠났지만 집엔 그의 옷가지와 신발, 책, 화장대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남편 이씨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인도에서 걸어가는데 뒤에서 차가 와서 사람을 덮친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며 “사고가 난 곳은 30년을 매일 걸어 다닌 인도인데, 바로 옆에서 외식하러 나가는 길에 손잡고 있던 아내가 왜 세상을 떠야 했던 것인지 여전히 원통하다”고 했다.

피고인 최원종 측은 재판 과정에서 “스토킹 범죄 집단이 날 괴롭혔다”며 “언론이나 경찰이 개입하게 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곳을 범행 장소로 선정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8일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이런 주장을 반복하자 유족들 사이에서는 “내 새끼가 무슨 죄가 있다고”라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또 다른 피해자 김혜빈씨의 아버지는 재판 과정에서 혜빈씨가 생전에 다녔던 건국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점퍼를 입고 출석하기도 했다. 증인 신분으로 참석한 재판에선 “20년간 건강하게 살았던 내 딸은 지금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재수까지 했고, 합격한 뒤 누구보다 기뻐했다”며 “새내기가 된 아이에게 수의로 과 점퍼를 입혀 떠나보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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