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통일 폐기” 한마디에… 범민련 남측본부 해산 수순

원선우 기자 2024. 2. 2.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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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친북 단체들 조직 재편 착수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가 해산 등 조직 재편에 착수한 것으로 1일 나타났다. 북한 김정은은 지난해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남 관계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며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 기구들을 정리·개편하라”고 했다. 이에 따라 노동당 외곽 범민련과 6·15 북한 조직이 정리에 들어갔는데, 국내에서 ‘통일운동’을 표방해온 파트너 기구들도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최근 공지문에서 오는 17일 총회를 연다며 ‘해산 총회’와 ‘새 조직 건설 결의대회’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본부는 최근의 남북 상황을 ‘새로운 격변기’로 규정하고 해산 이후 새로운 연합체를 만들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6·15 남측위도 지난달 31일 총회를 열고 향후 노선을 논의했다.

1997년 대법원 이적 단체 판결을 받은 범민련 남측본부는 그간 연방제 통일,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주장했다. 2014년 범민련 결성 24주년 때 북한은 범민련의 통일운동 사업을 ‘애국사업’이라고 추켜세우며 “북과 남, 해외의 동포들을 통일애국의 기치 아래 조직적으로 묶어세워 조국 통일의 주체적 역량을 강화시켰다”고 했다. 그런데 김정은이 ‘선대의 유훈’인 조국 통일 3대 헌장(자주·평화·민족대단결)을 버리고 통일 노선을 일시에 폐기하자 범민련 남측본부 등이 내부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북한인권민간단체협의회는 “남한 내 친‧종북 단체들이 일시에 설 자리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강철서신’ 저자이자 ‘주사파 대부(代父)’였던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도 “수십 년 동안 의존해 오던 인식의 틀이 무너졌으니 당분간 내부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했다.

최근 윤미향 의원 토론회에서 ‘전쟁으로 평화가 만들어진다면 수용해야’ 같은 말이 나온 것도 이런 혼란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친북 세력의 내부 분열을 막고 ‘단일 대오’를 유지하기 위해 김정은의 ‘전쟁 통일관’을 급하게 수용해 억지 논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픽=김하경

북한의 대남 기조 전환 이후 친북 진영에선 ‘기존 방식에서 탈피, 더 전투적·투쟁적으로 거듭나야 한다’ 같은 목소리도 나온다. ‘북의 전쟁관은 정의(正義)의 전쟁관’ 등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김광수 부산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은 최근 기고문에서 북한의 기조 변화에 대해 “남쪽의 운동 역량(범민련 남측본부, 6·15 남측위, 진보정당 등)에 대한 실망과 경고의 메시지”라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친북 단체들이 조직 해산·재편 등으로 반성적 실천을 하는 셈”이라며 “더욱 과격하고 전면적인 반정부 투쟁이 예상된다”고 했다. 실제 6·15 남측위가 지난달 개최한 포럼에선 올해 국지전이 아닌 핵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을 거론하며 “진보 진영 연합으로 대안의 정치 세력화” “대중 항쟁을 통한 윤 퇴진 실현” “전국적 자주 역량 확대 강화 총력” 같은 언급이 나왔다. 이들은 ‘핵전쟁 위험 속 촛불을 통한 박근혜 정권 교체’라는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통일위원회도 최근 ‘반제! 반전! 노동자 자주 통일 운동 역량 강화로 한반도 평화 실현하자!’ 등 구호를 채택했다.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지냈던 민경우 시민단체 길 대표는 “남북이 무력으로 충돌한다면, ‘이석기식 내란 모델’로 후방에서 북한에 호응할지를 놓고 앞으로 진영 내 노선 갈등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범민련 관계자는 “내부 노선 혼란 같은 해석은 침소봉대”라며 “조만간 입장을 정리해서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김광수 이사장은 “북의 대화 상대가 사라졌으니 여기서도 기구를 정리하는 것은 논리적인 귀결”이라고 했다. 국내 친북 세력이 ‘반정부 투쟁 강화’ 같은 동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에는 “통일 단체들이 북의 지령을 받는다는 건 극우적 프레임”이라며 “여러 세력이 자주적·주체적으로 정세를 판단 중이고, 윤석열 정부와 통일 운동을 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범민련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은 1990년 11월 한국과 북한, 해외의 민간 통일 운동 대표들이 모여 결성한 기구다. 남측, 북측, 해외 본부 3자 연대체를 표방했다. ‘북측 본부’는 노동당 외곽 기구다. ‘남측 본부’는 1990년대 ‘범민족 대회’ ‘통일 대축전’을 개최하며 정부 당국과 충돌했다. 1997년 대법원이 이적 단체로 판결했다.

☞6·15 위원회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 해외 공동 행사 준비위원회’는 6·15 남북 공동선언(2000)을 실천하겠다는 취지로 2005년 결성한 기구다. 범민련처럼 ‘한국, 북한, 해외의 각 계층·정당·단체·인사를 망라해 결성한 상설적인 전 민족적 통일 운동 연대 기구’를 표방했다. 통일 관련 각종 학술 토론, 행사를 주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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