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일부 지하화” “우린 전부 지하화”… 일단 내뱉고 보는 여야
수십조 사업비 조달 방안은 없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잇따라 ‘철도·역사(驛舍) 지하화’를 4월 총선 공약으로 내놓았다. 지하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효과는 구간에 따라 판이한 반면, 사업을 시행하는 데에는 최소 수십조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느 쪽도 사업비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관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지하화가 선거 승리를 위한 공약(空約)에 그치거나, 오히려 이행되면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은 1일 ‘도심을 지나는 모든 지상 철도’를 지하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경인·경원·경의·경의중앙·경춘·경부·호남·광주·전라선 및 GTX-A·B·C의 도심 구간 전체와 서울도시철도 2·3·4·7·8호선 전체 등 약 259㎞ 구간 철도를 모두 지하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이 철도들이 통과하는 역사도 모두 지하화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철도 1㎞를 지하화하는 데 약 4000억원이 들 것이라고 어림했다. 이에 따르면 259㎞ 전체를 지하화하는 데에는 103조6000억원, 이 가운데 80%가량을 먼저 지하화하는 데에는 약 80조원이 필요하다.
앞서 지난달 31일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경기 수원시 장안구를 방문해 구도심 철도 지하화를 공약했다. 민주당처럼 도심 모든 지상 철도의 지하화는 아니지만, 전국 주요 도시 중심부를 갈라 놓는 지상 구간을 지하화하겠다고 했다. 기존 철도 부지는 주변 지역과 묶어 개발하고, 이때는 용도·용적률·건폐율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사실상 무제한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부도 지난달 25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민생 토론회에서 주요 지상 철도 구간을 지하화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사업비로는 약 5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국민의힘과 정부, 민주당은 모두 이런 지하화를 국가 재정을 전혀 투입하지 않고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존 지상 철도와 역사 부지를 민간 사업자와 함께 개발해 나오는 이익으로 사업비를 전액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야가 지난달 국회에서 만든 ‘철도 지하화 특별법’에 규정돼 있는 방식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재원 조달에 관한 질문에 “지하화는 민자 유치로 이뤄질 것이라 재원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상 부위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성이 높은 상황”이라며, “경비 문제는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십조원의 사업비를 모두 개발 이익으로 충당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까지 각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추진돼 온 지하화 사업조차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사업비를 마련하지 못해 난항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철도 부지 대부분은 좁고 긴 선형으로 돼 있어, 단독으로는 개발에 적합한 부지가 아닌 경우도 많다. 큰 부지를 바탕으로 추진된 서울 용산역세권 개발 사업조차 장기간 표류 끝에 무산됐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공약의 진실성 여부를 따질 때 중요한 지표는 구체적인 시간표가 제시됐는지인데, 여야의 지하화 공약에는 모두 그런 시간표가 없다”며, “지키지도 않을 약속으로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킬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이런 경제성 없는 대규모 SOC 사업에 실제로 투자를 하게 된다면 국가 재정이 나중에 격렬한 위기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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