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번엔 여야 철도 지하화 경쟁, 80조원 누가 대나
여야가 일제히 철도 지하화를 총선 공약으로 발표했다. 국민의힘이 경기 수원 등 일부 도심 철도 지하화를 공약하자 다음 날 민주당은 서울의 지하철 2·3·4·7·8호선을 비롯해 부산, 대전, 대구, 광주 등 전국 모든 도시의 지상 철도를 예외 없이 지하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여야 모두 기존 철도 부지를 주거·상업 용지 등으로 개발해 그 수익금으로 철도를 지하화하겠다고 했는데 이것이 그렇게 쉬웠다면 왜 지금까지 안 됐겠나.
도시를 가로지르는 철도는 시민의 생활권이 단절되고 소음·분진 등 문제가 있다. 그래서 지하화하자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문제는 거기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이다. 역대 정부가 모두 철도 지하화를 검토했지만 결국 중단한 것도 막대한 비용 대비 효과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2013년 서울시 용역 결과에 따르면 서울 시내 지하철과 국철 지하화에만 최소 38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됐다. 이마저도 10년 전 계산이다.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비용이 들 것이다.
민주당은 철도 지하화에 1㎞당 약 4000억원, 전국적으로 총 80조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서울시 1년 예산의 2배 가까운 돈이다. 민주당은 사업비 대부분을 민자 유치를 통해 조달하기 때문에 별도의 예산 투입은 없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 경우 그랬듯이 막상 사업이 시작되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법을 바꾸고 결국 부담을 국민 세금으로 떠넘길 가능성이 크다.
선거 때 여야가 정책 경쟁, 공약 경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합리적이어야 한다. 이쪽에서 ‘1′을 준다고 하면 저쪽에선 ‘2′를 준다고 맞받는다. 재원이 있는지, 경제성이 있는지 따위는 뒷전이다. 원수처럼 싸우다가 돌연 의기투합하는 ‘기적’도 일어난다. 최근 여야가 통과시킨 광주~대구 달빛 철도 건설법이 그 예다. 고속도로 일일 통행량이 전국 평균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구간에 예비 타당성 조사도 없이 8조원을 쏟아붓겠다는 것이다. 13조원이 든다는 가덕도 신공항도 선거가 낳은 공항이다. 그런 공항이 전국에 수두룩하다.
대규모 개발 계획은 나라의 미래를 생각해 장단점을 면밀히 따지고 시간을 두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진행하는 게 정상이다. 선거용으로 급조하면 국가 재정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개발 비용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 선거철 여야의 개발 공약은 표를 얻기 위해 뒷감당 생각 없이 마구 던지는 포퓰리즘일 가능성이 높다. 유권자가 이를 심판해야 하는데 거꾸로 표를 던져주니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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