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환의 두잉세상] ‘자신과의 경쟁’이 ‘경쟁 교육’ 대안이다

전호환 동명대 총장 2024. 2. 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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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환 동명대 총장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저출산의 원인 가운데 하나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필요한 과잉경쟁’으로 진단하면서 저출산 해법으로 지방균형발전을 제시했다. 대통령이 언급한 과잉경쟁에는 ‘과잉경쟁교육’이 큰 몫을 차지한다.

지나친 교육열에서 비롯된 과잉경쟁교육은 한국이 마주한 많은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교육열은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동력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한 해 100만 명 이상이 태어나던 시기에 한국은 급속한 교육 팽창을 경험했고 이때 교육받은 세대들이 공업화와 민주화의 주역이 됐기 때문이다.

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려야 하듯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한국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의 과잉경쟁은 다양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한국은 사교육비 증가, 교권 추락, 학교폭력, 저출산을 비롯해 청소년 관련 부정적 지표에서 OECD 국가 중 최선두권에 있다. 대통령이 제시한 지방균형발전도 교육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대통령의 진단과 해법은 옳다. 문제는 과잉경쟁 교육을 어떻게 해소해 지방에 사람이 올 수 있게 만드느냐다.

‘자신과의 경쟁’이 필자가 제시하는 과잉경쟁교육의 해법이다.

영어로 교육(EDUCATION)은 ‘E(밖으로)+DUCE+ATE(끌어내다)’의 합성어다. 인간 안에 있는 능력을 밖으로 끌어내 길러준다는 의미다. 교육의 어원에는 한국에서 당연시되는 동급생을 이겨야 내가 잘 된다는 건 어디에도 들어있지 않다. 교육시스템의 존재 이유는 학생의 적성과 소질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 기제가 제대로 작동될 때 교육에서 비롯된 많은 문제가 풀린다. 건강한 몸과 마음, 바른 인성, 어떤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는 역량, AI와의 공존에 필요한 소양을 길러주는 게 시급함에도 소위 SKY 대학, 의대 올인, 킬러문항이 대중의 관심을 더 받고 있다.

‘자신과의 경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동명대의 두잉(Do-ing)교육과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국제바칼로레아) 프로그램이 입증하고 있다. 두잉교육은 무학년 무학점 무티칭 3무(無)를 바탕으로 어떤 세상이 와도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 방법론이다. 두잉 교육의 바탕은 ‘자신과의 경쟁’이다. 초중등이 아닌 대학에서 두잉 교육을 강조하는 건 100세 시대에 대학에서라도 ‘자신을 이기는 방법’을 알고 실천해야 대학 이후의 삶을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동명대 두잉대학 학생들은 난생 처음 바이올린으로 아리랑을 협주했다. 바이올린을 처음 만진 학생들이 불과 15주 연습 후 이뤄낸 성과다. 협주에 참여한 황영현 학생은 “꿈도 꿀 수 없던 바이올린 연주를 해낸 내가 자랑스럽다. 앞으로 어떤 힘든 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두잉교육은 성적과 순위만 중시되는 한국교육의 부작용을 없앨 수 있다. 진학을 위한 경쟁에만 매몰돼 ‘주입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학생은 자신에게 어떤 소질과 능력이 있는지 알지 못할 수 있다. ‘만들어진’ 학생은 아무리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들어간다 해도 인생에서 누구나 만나는 탁류와 급류에서 살아남기란 힘들다.

IB의 성과도 ‘자신과의 경쟁’의 중요성을 증명한다. 2024학년도 대학 입시에 사상 처음으로 응시한 IB 프로그램 이수 학생들은 대구와 제주에서 180여 명에 달한다. 제주 서귀포시 표선고 3학년 전체와 대구의 경북사대부고, 대구외고, 포산고 등 모두 공립학교 학생들이다. 특히 표선고는 제주도의 지역소멸이 우려되는 오지에 있어서 사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IB 학생들은 수시 학생부 종합전형으로밖에 응시할 수 없었지만, ‘엄청난’ 성과를 냈다.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밖에 갈 수 없는 건 IB 졸업시험 기간과 수능 시험이 겹쳐 수능을 치르지 않기 때문이다(일부는 수능에 응시했다). 표선고의 경우 1월 중순 기준으로 105명의 졸업생이 수시모집에서 중복합격을 포함하면 202개 대학에 합격했다. 이 중에는 서울대 고대 연대를 비롯해 서울 시내 주요 15개 대학과 거점국립대와 UNIST 등 과학기술특성화대학과 외국대학도 포함돼 있다. 두잉교육을 추구하는 동명대에도 4명이나 지원했다. 임영구 표선고 교장은 “놀라운 성과”라고 자평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IB를 이수한 학생들은 간판과 지역이 아닌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진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번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낸 학생들의 중학교 내신 성적은 중상위권이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성균관대에 합격한 학생의 어머니는 IB 프로그램에 만족하면서 많은 고교로 확산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두잉교육과 IB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경쟁이다. 협업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노력을 하는 게 특징이다. 자신과의 경쟁은 미래세대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서울이 아니어도 지방 어디서고 할 수 있다. 사교육이 없어도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전 세계 어느 대학이라도 갈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줄 때 한국교육은 살아날 것이고 지방균형발전 또한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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