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적과 전쟁보다 內戰이 무자비한 이유

정우상 기자 2024. 2. 2.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尹·韓과 친명·친문 갈등
與野 “짜고 치는 쇼” 의심
동지와 맞붙는 내전이
적과의 전쟁보다 가혹

“짜고 치는 고스톱, 약속 대련 아니냐.”

최근 여야 정치인들에게 거의 동시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야당 분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갈등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한동훈을 윤석열 아바타라고 공격했는데 아바타에게 대통령실이 사퇴를 요구했다고? 대통령 스스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후배였다고 말했는데 설마 명품 가방 이슈에 ‘국민 눈높이’ 이야기했다고 그럴 리 없다고 했다. 야당 인사는 “진짜 갈등이라면 민주당엔 호재지만 나라가 걱정이고, 약속 대련이라면 두 사람 모두 정치 타짜”라고 했다.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중도층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쇼, 이벤트라는 것이다.

여당 분들은 최근 민주당 친명과 친문의 갈등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핵심 인사들이 출마하는 곳마다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이 도전장을 던졌다. 친명 원외 인사들은 문재인 정부 임종석,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윤석열 정권 탄생에 기여했다”며 출마를 반대했다. 학생운동 후배인 한총련 출신 인사들의 전대협 출신 인사들에 대한 퇴진 요구는 여권의 운동권 청산 구호보다 거칠고 직접적이다. 많이 해 먹었으니 이젠 좀 비키라는 것이다. 여당 인사는 “우리 눈에 똑같은 좌파인데 왜들 저러느냐”고 했다. 야당에 윤·한 갈등, 여당에 친명·친문 갈등은 이해의 영역을 한참 벗어났다.

정치부 기자 10년 하고 나서야 선거의 본령은 본선(총선·대선)보다 예선(공천·경선)이라는 걸 알게 됐다. 굵직한 사건은 본선이 아니라 예선에서 터졌고, 동지라고 했던 사람들이 적보다 처절하게 싸우는 게 예선이었다. 총선 예를 들면 여야 후보들이 각 지역구에서 맞붙는 것이 본선, 같은 당에서 어디에 누가 후보로 나설지 그리고 공천권을 누가 어떻게 행사할 지가 예선이다. 대선에선 여야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게 예선, 여야 대선 후보가 맞붙는 게 본선이다. 국민은 여야의 진검 승부가 펼쳐지는 본선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내 투표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선은 두 정당 선수들이 링 위에서 룰을 지키며 수많은 관중과 심판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하는 권투다. 피나고 쓰러지고 승패가 갈리지만, 선수가 링을 뛰쳐나가거나 링이 부서지는 일은 없다.

반면 예선은 자기들끼리 벌이는 내전(內戰)인데 총선·대선 같은 적과의 전쟁보다 무자비하고 가혹하다. 시스템 공천을 강조하지만 실은 그런 거 의미 없어지는 ‘진실의 순간’이 온다. 어디서 어떻게 칼이 들어올지, 누가 적이고 동지인지, 약속과 배신이 난무하고 피아 구별이 안 되는 안갯속이다. 공천권을 쥔 당대표가 갑자기 물러나거나 내전으로 당이 쪼개지기도 한다. 지금 여야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일들은 예선 초반 상황이다.

여권에선 현 권력과 미래 권력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고, 야당에선 2017년 대선 경선 때 시작된 앙금이 남아 지금의 친명·친문 갈등으로 이어졌다. 이에 앞서 이준석, 김기현 전 대표 문제가 있었고 야당에선 이낙연과 비명계의 집단 탈당이 있었다. 앞으로 친윤이라고 했던 그룹이 어떻게 변할지, 친명과 운동권들의 내부 투쟁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지켜보면 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적에게 패하면 다음 기회가 있지만, 우리 내부의 싸움에서 패하면 이 판에서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그들만의 싸움은 혐오스럽다. 그러나 내전 결과에 따라 국가와 국민 삶의 명줄을 쥔 입법부 주도 세력이 바뀐다. 직접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지만, 여야의 예선전을 유권자들이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