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진찬연은 맛이 없다

경기일보 2024. 2. 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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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숙 세계축제연구소장

얼마 전 문화계 지인들이 수원을 방문했다. 점심은 인터넷으로 검색해 유명 맛집을 방문했고 팔달문 주변의 전통시장, 성곽 걷기와 통닭거리까지 볼거리가 많아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수원천은 하천의 규모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돌담의 느낌, 하천 주변에 나란히 발달한 시장의 모습이 마치 서울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 이어진 청계천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며 오랜 역사를 지닌 대도시의 면모가 느껴진다고 했다. 또 화성 성곽 모양의 기념빵을 사먹으며 당일치기 여행하기에 딱 좋은 도시라며 즐거워했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곳은 화성행궁이었다. 사실 지인들은 주요 문화기관과 언론계에 몸담은 인사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수원이 처음도 아니었고 요즘 인기 있는 서울 4대 궁궐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었다. 그러나 이날처럼 순수한 여행객이 돼 입장권을 끊고 화성행궁을 1시간 넘도록 자세히 살펴본 건 처음이었다.

특히 ‘늙음이 찾아온다’는 의미의 노래당과 관광객에게 흥미를 전하기 좋은 ‘하마비’, 복잡하게 구획된 행궁의 동선을 보며 큰 관심을 보였다. 노래당은 정조 아들의 나이가 15세가 되면 왕위를 물려주고 수원으로 내려와 노년을 보내고자 했던 정조의 마음이 엿보였고 나이듦에 대한 왕의 인간적 모습에 공감이 갔다. 또 행궁 앞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하마비를 두고 외국인들에게 ‘왕의 공간’을 상징적으로 알리고 활용하기에 좋은 콘텐츠인데 낮은 비석에만 새겨놓아 가려진 것이 아쉽다고 했다.

가장 안타까웠던 건 먼지가 쌓인 듯 맛없어 보이는 진찬상이었다. 정조가 혜경궁 홍씨에게 올렸던 진찬상의 모형이 너무 오래되고 색이 바래 “회갑상이 왜 이래! 이거 보고 누가 먹고 싶어 하겠어? 외국인들이 정말 실망하겠다”라며 색바랜 상차림을 보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 있던 외국인 방문객들도 여기에서만큼은 흥미를 잃고 쌩하니 지나가는 코스로 여겼다. 누가 봐도 초라한 진찬연이었다. 거기다 눈이 온 다음이라 행궁 전체의 방문객 동선에 물웅덩이가 고여 불편함이 많았는데 시급히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당일치기 여행에 딱 좋은 수원’이라는 수식어도 빨리 벗어야겠지만 하루가 되더라도 외지 방문객을 확실하게 만족시킬 세심한 관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색바랜 진찬연 때문에 효심 많은 정조의 진심까지 퇴색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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