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식용유 180통 쌓인 3층 수색중 ‘펑’… 바닥 무너지며 추락한듯
‘문경공장 화재’ 현장 재구성
1일 배종혁 문경소방서장은 “현장에서 만난 업체 관계자가 ‘안에 있던 5명 모두 탈출했다’고 했는데도 불이 난 건물 안에서 관계자 1명이 달려 나왔다. 건물 내부에 사람이 있는지에 대한 관계자 진술이 바뀌고 우왕좌왕하는 상황이었다”고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소방대원들은 공장 안에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인명을 수색하기 위해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소방 관계자는 “뒤늦게 1명이 나왔지만, 앞서 4명만 탈출했던 것”이라며 “결과적으로는 5명이 모두 빠져나온 게 맞았다”고 설명했다. 찰나의 엇갈린 순간 탓에 당시 건물 안으로 투입됐던 소방대원 4명 중 박수훈 소방사(35)와 김수광 소방교(27)는 동료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 식용유 3200L가 숨죽이고 있던 화약고
최초 불이 발생한 지점은 건물 3층 작업장 내 튀김기. 대원 4명이 건물 내부로 진입한 직후만 해도 불길이 거세지 않아 이들은 인명 수색과 화재 진압을 위해 곧바로 계단실을 통해 3층으로 향했다.
불이 난 건물 옆에서 두부공장을 운영하는 박현승 씨는 당시 대원들에게 진입로를 알려줬다고 한다. 박 씨는 “우리 공장 쪽에도 가스통 등이 많아 불이 옮겨 붙을까 봐 호스를 이용해 물을 계속 뿌리고 있었는데 소방관 4명이 다가오기에 입구를 알려줬다”며 “‘물을 계속 뿌려야 한다’고 조언해 준 뒤 건물로 향했는데, 순직 소식을 듣게 돼 안타깝다. 빈소에 꼭 찾아가 애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3층에 진입한 대원들은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뉜 작업장과 소독실, 탈의실 등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던 중 순식간에 내부에서 상황이 급변했다. 갑자기 폭발음이 나더니 대형 불길이 솟구쳤고 시커먼 연기를 뿜었다. 소방 관계자는 “당시 시야가 완전히 제한됐다고 한다. 대원들이 황급히 탈출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생존한 대원 2명은 가까스로 계단실 1층까지 내려와 창문을 깨고 바깥으로 탈출했다. 하지만 김 소방교와 박 소방사는 계단실을 코앞에 두고 대피에 실패했다. 이들이 계단실로 진입하기 직전에 3층 바닥이 무너지면서 추락해 고립된 것으로 보인다고 소방당국은 설명했다.
업체 관계자 등에 따르면 3층 작업장은 애초부터 대형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업체 대표 A 씨는 “닭강정 주문이 대량으로 들어와 3층 작업장 안에 재료가 가득 차 있었다. 특히 3층에는 닭강정을 튀기려고 준비한 업소용 18L짜리 식용유 180통 정도가 적재돼 있었다”고 말했다. A 씨는 “튀김 찌꺼기 배출구에서 열이 발생하면서 불이 났고, 천장 환풍기가 불길을 빨아들여 폭발하며 대형 화재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소방청과 경북소방본부, 경북경찰청 과학수사대와 문경경찰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은 2일 오전 10시 반부터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벌여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기로 했다.
● 10년간 소방관 55명 순직…필수장비도 부족
불이 난 공장이 인화성이 강한 샌드위치 패널로 이뤄졌던 것도 화재 피해가 커진 원인으로 지목됐다. 소방 당국이 현장 도착 후 약 30분 만에 대응 1단계를 발령한 데 이어 24분 뒤에 대응 2단계를 발령할 정도로 불길이 순식간에 거세졌다. 그러다 샌드위치 패널 구조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고립돼 있던 대원 2명의 구조작업도 더딜 수밖에 없었다.
소방 당국은 화재 진압과 동시에 중장비를 동원한 수색작업을 병행한 끝에 1일 오전 1시 1분경, 오전 4시 14분경 잇달아 숨진 채 발견된 대원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이들은 서로 5m가량 떨어져 있는 곳에서 잔해 더미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 당국은 먼저 수습된 시신의 신원을 김 소방교로 추정했지만, 정확한 신원 확인을 위해 유전자(DNA)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소방 대응 단계는 이날 오전 9시경 해제됐다.
소방관 순직 사고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소방관 순직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1년∼2022년 1월 기준 총 55명이 순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별로는 30대가 22명으로 가장 많았고, 출동 단계별로는 현장 활동에서 43명이 순직했다.
이 의원은 “한 해 평균 5명이 순직하고 400명 넘게 공상으로 다치고 있는데도 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의 생명을 담보하기 위한 필수 장비가 여전히 개별 지급되지 않고 있다”며 “구조가 필요한 사람의 형체나 화점을 인식하기 위한 열화상카메라나 무전기 등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방관이 현장에 뛰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경=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문경=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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