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대 굴리는 ‘주식 농부’, “이것만 고쳐도 주가 2~3배 금방 갑니다”
지난달 새해 증시 개장식에 윤석열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참석, “임기 중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2주 뒤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네 번째 민생 토론회에서 “자본시장의 도약을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겠다”면서 ‘소액 주주 권리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 등을 언급했다. 언론은 ‘금융투자 소득세 폐지’를 주목했지만, 더 큰 밑그림은 ‘소액 주주 권리 보호’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의 방향 제시는 오래전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지적해 온 ‘주식 농부’ 박영옥(64) 스마트인컴 회장의 문제의식과 일맥상통한다. 박 회장은 최근 ‘주주 권리가 없는 나라-왜 한국 주식 시장은 공정과 상식이 작동하지 않는가’(김규식 공저)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대한민국 증시는 주주 배신의 역사다’라는 도발적인 화두를 던지며 한국 증시의 치명적 결함을 조명하고,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주주 환원에 인색한 이유는?
“대기업의 경우 대주주의 지분율(60대 대기업 오너 지분 3.5%)이 낮아 배당을 하면 자기가 가져가는 몫이 적다. 지배주주 입장에선 배당보다 자(子)회사를 여러 개 만들어 월급과 상여금을 많이 가져가거나, 터널링(상장사의 이익을 지배주주가 소유한 비상장사로 이전)을 통해 이익을 빼돌리는 게 더 낫다.”
-사외이사들이 제동을 걸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사들이 대주주에 종속이 돼 있어서 감시자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사들이 회사의 이익에만 충실하면 되게 돼 있는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의 경우 ‘듀티 오브 로열티(duty of loyalty) 법’으로 이사가 주주들에 대해 충성심을 보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배주주와 소액 주주 간 이해가 상충하는 대표적인 문제로 ‘쪼개기 상장’을 지적했다.
“카카오는 핵심 사업을 하나둘 분사시켜 계열사가 180개로 불어났다. 그 과정에서 카카오 주주들은 주주 가치가 계속 줄어드는 피해를 보았다. LG화학은 2010년부터 10년간 13조원을 배터리 사업에 투자했다. 신사업 리스크 때문에 주가는 계속 정체돼 있었고, 주주 환원도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배터리 사업을 물적 분할하고 상장하는 바람에 LG화학의 시총이 25조원이나 날아갔다. 주주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은 다르다. 미국의 알파벳은 구글, 유튜브 같은 알짜 자회사를 갖고 있지만, 상장 기업은 알파벳 하나뿐이다.”
-선진국에선 기업 물적 분할을 어떤 식으로 하나?
“성장 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하면, 자회사 주식을 모회사 주주에게 현물 배분한다. 독일 다임러그룹(벤츠 자동차 제조사)은 자회사 다임러 트럭을 분사할 때 다임러 트럭 신주 65%를 다임러 주주들에게 현물 배분했다. 영국 GSK(제약 기업)도 자회사 헤일리온(Haleon)의 신주 55%를 GSK 주주들에게 현물 배분했다.”
-책에서 ”소액주주들의 곳간을 터는 유령”이라면서 ‘자사주 마법’을 비판했다.
“주주 환원에는 현금 배당과 주식 배당이 있다.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 주식 수가 줄어드는 만큼 주식 가치가 올라가 주식 배당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미국 기업 애플이나 엔비디아는 지속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고 소각해 기존 주주의 주주 가치를 끌어올린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지배주주들이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자사주를 악용하고 있다. 지주사가 자회사를 만들어 상장을 하면 지주사의 자사주 의결권이 살아나고, 자사주 지분만큼 신주 배정을 한다. 이렇게 되면 자사주 지분율만큼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올라가 모자(母子) 회사에 대한 지배주주 지배력이 더 강화된다.”(※금융위원회가 지난달 30일 자사주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는데, 자사주에 대해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교환도 늘고 있다.
“2022년 11월 고려아연이 LG화학, 한화와 자사주를 맞교환했다. 지분 교환과 동시에 자사주의 의결권이 부활해 경영권 방어에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일반 주주로서는 그만큼 주주 가치가 희석되는 피해를 입었다. 본래 자사주의 매입 취지는 주주 환원인 만큼 자사주 소각으로 이어지는 게 맞다. 최근 삼성물산, 네이버, 현대모비스 등에서 주주 환원 차원에서 자사주 소각을 실행하고 있다. 바람직한 변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다른 요인으로 상속·증여세 산정 때 시가평가 제도의 문제점도 지적했는데.
“최대 주주의 경우 주식 할증 과세까지 적용하면 상속세율이 60%에 이른다. 상속을 앞둔 지배주주 입장에선 주가가 낮은 게 단연 유리하다. 지배주주가 주가를 누르다 보니 건실한 기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5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PBR이 1 이하인 회사에 대해선 상속·증여세 과세 기준을 ‘시가’ 대신 ‘순자산 가치’로 하면 지배주주가 주가를 누를 유인이 사라져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
-대주주의 배당 촉진을 위한 제도 개선 방법은?
“배당 소득 분리과세를 대주주한테도 적용하면 된다. 금융소득이 2000만원이 넘으면 종합소득세와 지방세로 최대 49.5%를 세금으로 내야 하고, 여기에 건강보험료까지 오르니 대주주 입장에선 배당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적용해주면 대주주의 배당 유인이 생긴다.”
-국민 노후 대책의 일환으로 65세 이상 노인에게 배당소득세 면제를 주장하는데.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율이 너무 높고, 대부분 1년도 안 돼서 폐업한다. 상장 기업 중엔 배당 수익률이 7~8%씩 나오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 정도 수익률이면 어떤 사업을 하는 것보다도 안정적이다. 은퇴자에게 배당소득세를 면제해 주면 장사 대신 주식 투자로 노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한국 증시도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면서 선진화될 것으로 믿나?
“일본은 아베 정권이 기업 거버넌스를 개선하면서 ‘재팬 디스카운트’를 극복했다. 요즘 일본 증시는 연일 34년만의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 않나. 한국 증시도 소액 주주 권리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만 되면 2~3배 금방 올라갈 수 있다. 아시아의 4마리 용 중에서 홍콩, 싱가포르, 대만 증시는 이미 선진화됐다. 한국도 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GDP 한국 절반 대만이 주식 시총은 360조원 더 커
박 회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상황을 대만하고 비교하면 뚜렷해진다고 설명한다. 대만은 경제·산업 구조, 지정학적 리스크는 한국과 비슷하고, 인구와 GDP는 한국의 절반밖에 안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를 1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것)은 0.9배로 대만(2.2배)의 절반도 안 된다. 대만 증시의 시가 총액은 2조215억달러로 한국(1조7444억달러·1월 23일 기준)보다 2771억달러(약 360조원) 더 크다. 한국과 대만 증시의 시총 역전 이유에 대해 박 회장은 “기업들이 이익을 얼마나 주주들에게 돌려주는지를 뜻하는 ‘주주 환원율’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대만 기업들은 평균 배당 성향이 52%나 되는데, 한국은 19%에 불과하다. 박 회장은 “대만 경우 화교 자본이 계속 압력을 넣어서 증시에 선진화된 룰(제도)이 정착된 반면 한국은 여전히 낙제점 수준의 제도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박영옥은 누구?
전북 장수 출신. 중학교 졸업 후 서울의 섬유 공장에서 4년 동안 일했다. 방송통신고를 나와 중앙대 경영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재학 중 증권분석사 자격증을 따고 증권사에 취업했다. 대신증권을 거쳐 37세에 교보증권 압구정지점장을 맡았다. 외환위기와 9·11 테러 등 주식투자 암흑기를 거치며 전업 투자자로 변신했다. 그는 농부가 좋은 볍씨를 고르듯 좋은 기업을 골라 오래 투자하는 ‘농심(農心) 투자’ 철학으로 높은 수익률을 얻고 있다. 현재 100여 곳 상장 기업의 주주로 활동 중이며, 이 중 20여 기업은 2대 주주 지위를 갖고 있다. 현재 그가 보유한 주식의 시가 총액은 1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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