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해 나의 크리스마스는 반납” 말 남기고 돌아오지 못한 청년 소방관들

문경=명민준 기자 2024. 2. 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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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화재 소방관 2명 순직]
5년차 27세 故 김수광 소방교… SNS 아이디에도 ‘119’ 사용
35세 미혼 故 박수훈 소방사… 평소 주변에 “난 소방과 결혼”
마지막 출동 지난달 31일 오후 7시 58분경 경북 문경시 신기동 육가공품 제조 공장 1층에서 김수광 소방교(27)와 박수훈 소방사(35)를 포함한 소방관 4명이 인명 수색을 위해 화재 장소인 3층으로 향하고 있다. 이것이 김 소방교와 박 소방사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영상이 됐다. 이후 갑자기 공장 내 불이 커지며 두 소방관이 고립됐고, 1일 새벽 숨진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동료 소방관들은 “늘 재난 현장에 먼저 뛰어들던 소중한 동료를 잃었다”며 안타까워했다. 폐쇄회로(CC)TV 화면 캡처
“누군가의 크리스마스를 위해 나의 크리스마스를 반납한다.”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한 육가공품 제조공장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김수광 소방교(27)가 2019년 성탄절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긴 글이다. 그해 22세의 나이로 소방관이 된 그는 아이디에 119를 붙이고, 프로필에 ‘KOREA FIREFIGHTER(대한민국 소방관)’라는 소개문구를 걸었다. 성탄절 밤 근무가 고될 법도 하건만, 이날 근무복을 입고 찍은 사진 속 그의 표정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저는 소방하고 결혼했어요.”

또 다른 순직 소방관인 박수훈 소방사(35)는 동료들이 ‘언제 결혼할 거냐’고 짓궂게 물을 때마다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육군 특수전사령부 중사였던 그는 ‘사람을 구하는 보람을 느끼고 싶다’며 2022년 2월 ‘늦깎이’ 소방관이 됐다.

두 소방관은 재난 현장에서 늘 몸을 아끼지 않았다고 1일 동료들은 증언했다. 지난해 7월 경북 집중호우 땐 68일이나 실종자 수색에 참여하고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동료는 “늘 현장에 먼저 뛰어드는 친구들이었다”고 했다. 동료 김춘영 소방위는 “남들 하기 싫은 걸 다 하고 싶어 했다”고 회상했다.

마지막 출동이 된 지난달 31일도 마찬가지였다. 김 소방교와 박 소방사는 이날 오후 7시 56분경 육가공품 제조공장의 화재 현장에 도착했을 때, ‘안에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직원의 말을 들었다. 이들은 주저 없이 인명 수색을 위해 불이 난 3층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때 불길이 갑자기 커지면서 3층 바닥이 무너졌다. 식품 조리를 위해 쌓아둔 식용유통 더미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안 그래도 무너지기 쉬운 샌드위치 패널 구조의 공장이 삽시간에 붕괴한 것으로 소방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함께 출동한 다른 대원 2명은 창문을 깨고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김 소방교와 박 소방사는 끝내 고립됐다. 불길은 거셌고 무너진 건물의 잔해는 거대했다. 동료 대원들이 필사적으로 진화했지만 1일 오전 1시경 김 소방교가, 오전 4시 14분경 박 소방사가 각각 잔해 속에서 숨진 채 수습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두 소방관의 순직에 대해 “비보를 듣고 가슴이 아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고귀한 희생과 노고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대통령실 서면 브리핑을 통해 애도를 표했다. 윤 대통령은 두 대원에 대해 1계급 특진과 공적이 뚜렷한 공무원에게 수여하는 훈장인 ‘옥조근정훈장’ 추서 했다.

“불길 속 사람 있다” 한마디에, 주저없이 뛰어들었다

동료들 “남 하기 싫은 일 하던 사람”
특전사 대원 출신 박수훈 소방사… 작년 예천 폭우땐 실종자 수색 앞장
비번날도 출근하던 김수광 소방교… 인명구조사 합격뒤 구조대 자원

화재 현장 바라보며 고개 떨군 동료들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한 육가공품 제조공장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박수훈 소방사와 김수광 소방교의 소식을 접한 동료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달 1일 오전 두 소방대원의 동료들이 화재로 타버린 공장을 바라보고 있다. 문경=뉴시스
“항상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했던 사람.”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육가공품 제조공장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박수훈 소방사(35)의 십년지기 송현수 씨(34)는 떠난 친구를 1일 이렇게 기억했다. 송 씨는 “박 소방사는 근무지인 문경이 다른 대도시에 비해 출동할 기회가 적어서 아쉬워했을 정도”라며 “항상 ‘더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박 소방사는 특전사로 근무하던 중 ‘사람을 구하는 일에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소방관에 지원해 2022년 2월 임용됐다. “불 속에 사람 있다”는 말에 주저 없이 뛰어든 그는 결국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떠났다.

● ‘하면 된다’ 외치던 특전사 출신 구조대원

이번 화재로 순직한 박 소방사와 김수광 소방교(27)의 소식을 접한 동료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박 소방사와 김 소방교는 전날 인근 주민의 신고를 받고 화재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소속 소방관이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이들을 ‘솔선수범하는 사람들’로 기억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7월 경북 예천군 폭우 때도 실종자를 수색하는 데 앞장섰다.

박 소방사는 태권도 도장에서 사범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소방관 시험 준비를 병행했다. 2007년부터 박 소방사를 알고 지낸 김교철 상주시태권도협회장(50)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7전 8기로 소방관을 준비했던 친구”라며 “10년가량 준비한 끝에 32세 늦은 나이에 소방관 임용에 성공했을 때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고 회상했다. 박 소방사는 2021년 소방공무원 최종 합격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합격 소식과 함께 “아싸 소방관!”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송 씨는 “항상 아이들을 챙겼다.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니까 아이들이 많이 따랐다”며 “아이들이 잘 못 따라와도 긍정적으로 ‘하면 된다!’를 가르쳤다”고 말했다. 박 소방사는 장남으로 여동생이 둘 있는데 두 여동생의 학자금을 본인이 다 벌어서 대학을 졸업시켰다고 한다. 송 씨는 “(화재) 소식을 기사로 접하고 설마 했는데, 기사 내용과 정황이 다 박 소방사를 가리켜 한숨도 못 잤다”며 “힘든 시기가 길었는데 이렇게 가버리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 비번에도 출근해 인명구조사 자격증 공부

김 소방교는 2019년도 공개경쟁 채용으로 임용돼 20대 초반부터 경북도소방본부에 몸을 담았다. 지난해에는 소방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취득하기 어렵기로 소문난 인명구조사 시험에 합격해 구조대에 자원했다.

김 소방교와 함께 일한 김모 소방위는 “남들 하기 싫은 걸 다 하고 싶어 했다”며 “비번에도 집에 안 가고 구조대원들과 함께 인명구조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연습하던 친구였다”고 전했다. 2022년 11월에는 제60주년 소방의 날 기념식에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평소 남다른 화재 예방 활동으로 타의 모범이 되는 소방공무원 등에게 매년 주어지는 표창이다.

이날 두 순직 소방관이 속한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직원들은 왼쪽 가슴에 검은색 리본을 단 채 침통함에 빠져 있었다. 센터의 한 팀장은 얼굴에 아직 닦지 않은 재가 묻은 채 울먹였다. 구조할 때 입고 나간 복장을 미처 갈아입지 못한 채 눈가는 빨갛게 충혈된 모습이었다. 본보 기자가 다가가 말을 걸자 한 손에 담배와 장갑을 든 채 “미안합니다”라고 잠긴 목소리로 응답했다.

김 소방교와 박 소방사를 알고 지낸 동료 김모 소방위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회상했다. 동료 남모 소방관은 “항상 밝게 웃고 다니고 주변에 힘을 줬다”고 기억했다. 남 소방관은 “동료 중에서도 ‘사회생활 진짜 잘한다’ 싶은 사람들 있지 않나. 둘 다 그런 사람이었다”고 덧붙였다. 동료들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7월 예천군 폭우 피해 때도 실종 주민들을 찾기 위해 68일 넘게 지속된 수색 작업에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솔선수범해서 물에 뛰어들던 사람들이다.

문경=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문경=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송유근 기자 big@donga.com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문경=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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