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뮤지컬 공연장과 ‘침묵’의 목 캔디

이정구 기자 2024. 2. 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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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뮤지컬을 보러 가는 날, 강추위에 입고 나온 패딩 점퍼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공연장에 도착해 옷을 벗어 대충 접었을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추워도 코트를 입을걸’ 생각했다. 물품 보관함은 선착순 마감. 불안감이 커졌다.

예매한 좌석 뒷줄에 뮤지컬 관람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오른 커플이 있었다. 공연 시작 10여 초 전, 암전(暗轉) 상태에서 공연장 직원이 작은 플래시 조명을 비추며 다른 커플을 그 뒷줄로 안내했다. 먼저 앉은 커플이 한 칸씩 잘못 앉아 자리를 옮기느라 1막 시작 분위기가 깨졌다. ‘늦을 수도 있지, 자리를 착각할 수도 있지’ 넘겼다.

뒤에서 기침 소리, 속삭이며 웃는 소리가 여러 차례 들렸다. 관람에 방해될 정도가 아니라 괜찮았지만, 뭔가 또 불안했다. 1막이 끝났다.

늦게 들어왔던 커플은 잠시 자리를 떴고, 남아있던 커플이 “저 사람들 왜 자꾸 웃고 떠드느냐”고 짜증을 냈다. 그때, 직원이 다가와 그 커플을 향해 “혹시 기침이 많이 나오시나요. 마스크와 목 캔디를 좀 가져다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남성이 곧바로 “기침 안 할게요. 근데 옆 사람들 공연 중에 자꾸 떠드는데 조용히 좀 하라고 해주세요”라고 맞받았다. 자리를 비웠던 커플이 곧 돌아왔고, 직원은 다시 와 “주변 분들이 불편해하시니 공연 중에는 조용히 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뒤를 돌아보진 않았지만, 싸늘했다.

‘패딩이 움직이면 어쩌지, 갑자기 기침이 나오면 어쩌지, 공연장 직원이 왜 목 캔디를 챙겨야 하지’ 생각하다 보니 숨소리도 내기 어려운 ‘시체 관극’이 됐고, 공연은 끝났다. 공연은 좋았던 것 같은데, 목과 등이 담 걸린 듯 뻐근했다. 주연 배우보다 목 캔디를 이야기한 직원이 더 기억에 남았다.

코로나 대유행 끝이 보이던 2022년 말 나온 책 ‘대면 비대면 외면’에서 저자 김찬호 교수는 “대면의 반대말은 비대면이 아니라, 외면”이라고 했다. 뮤지컬 취미를 공유하는데도 직접 한마디 양해 대신 외면하고 직원을 중간에 세운 모습이 씁쓸했다. 차라리 외면을 강제한 ‘거리 두기’ 시절 공연장이 좋았을까 싶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자리는 무조건 띄엄띄엄 앉던 시절이라 기침 소리도, 바스락거리는 패딩 소리도 작았을 테니.

소통 단절 사회라는 말은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져 식상해졌고, 원인도 셀 수 없이 다양해 단절을 피할 수 없는 세태가 된 듯하다. 팬데믹 시대 ‘거리 두기’, 마스크의 일상생활화, MZ세대의 줄인 말과 문해력 저하, 스마트폰 중독 등 저마다 꼽는 불통(不通) 이유만 늘어간다.

김 교수는 책에서 ‘사회적 면역력’을 회복하는 여러 방법을 조언했다. 아프리카 고아 코끼리를 돌보는 전문가의 ‘눈(目)’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수유하기 전 반드시 코끼리를 오랫동안 바라본다고 한다. 그래야 신뢰가 쌓인다고 한다. 단순하지만 그날 공연장에선 가장 어려웠던 일 아닐까. 당분간 목 캔디 비슷한 사탕을 먹게 될 때마다 씁쓸한 기억이 떠오르고 공연장에 가면 또 바짝 긴장하겠지만, 어디서든 눈을 보고 말해야겠다는 새해 다짐으로 1월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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