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후티반군, 중동의 또다른 `화약통` 된 이유
북부 기반 자이드파 단체가 후티 뿌리
사우디 미영은 정부군, 이란은 후티편
美 후티공격 막을 효과적 방법 고심중
후티가 재편되는 세력균형 서막 연 셈
예멘의 후티 반군이 중동전쟁의 먹구름을 키우고 있다.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선박들을 공격하고, 이에 미국과 영국이 보복을 감행하면서 중동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다. 미·영과 대결할 준비가 돼 있다는 후티 반군은 누구이고, 홍해 선박을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바 여왕'의 나라
후티 반군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예멘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예멘은 아라비아반도 남서부 끝에 위치한 나라다. 수에즈 운하를 나와 인도양으로 연결되는 지정학적 길목에 있다.
예멘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기원전 10세기경 예멘 지역의 시바 왕국은 몰약과 유향 무역으로 번성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시바의 여왕과 솔로몬 왕의 로맨스'는 유명하다. 세계적인 커피 산지로도 명성이 높다. 모카 커피는 15~17세기 예멘 항구도시 모카를 통해 커피가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붙은 이름이다.
7세기 이슬람교가 전파되어 예멘은 이슬람 국가로 변모했다. 9세기 자이드 이맘(종교 지도자)이 다스리는 지야드 왕조가 세워졌다. 자이드는 시아파의 한 분파다. 1517년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예멘을 정복했다. 오스만투르크가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북예멘은 1918년 독립했다. 1962년 쿠데타가 발생해 후에 대통령이 된 알리 압둘라 살레가 정권을 잡았다.
영국의 지배를 받던 예멘 남부는 1963년부터 본격적인 반영 항쟁을 시작한 끝에 1967년 남예멘으로 독립했다. 이후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대립이 발생했고, 강경파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정권을 장악해 친소련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했다. 남예멘은 중동 유일의 사회주의 국가였다.
북예멘과 남예멘은 1970년대 국경 문제로 잦은 무력 분쟁을 벌였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해 냉전이 끝나면서 1990년 5월 협상에 의한 통일을 이뤄냈다. 역사적인 통일이었으나 불완전한 통일이었다. 내전이 일어났고 후티는 이 과정에서 싹트고 자랐다.
◇미국과 맞짱 뜨는 반군
후티 반군은 산악지역이 대부분인 북부가 근거지다. 이 곳 주민들은 대부분 자이드파다. 수니파가 다수인 예멘에서 자이드파는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한다.
후티 반군은 예멘 북부에 기반을 둔 자이드 종교운동단체 '신앙의 청년'이 발전한 조직이다. 1994년 자이드 종파의 무장세력으로 창설됐다. 조직의 초기 지도자 후세인 바르레딘 알 후티(al-Houthi)의 이름을 따서 '후티 반군'으로 불리지만 공식 명칭은 '안사르 알라'(알라의 추종자들)다. 다만 이란이나 헤즈볼라만큼 종교적이지는 않다.
후티 반군은 수니파의 남예멘 분리 독립을 막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반미·반이스라엘 성향이 매우 강해졌다. 2004년 9월 지도자 후세인이 정부군에 의해 살해되면서 후세인의 이복동생인 압둘 말리크 알 후티(45)가 수장이 됐다. 후티 반군은 2011년 중동에서 확산된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 이후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말 후티 반군은 북쪽에서 밀고 내려와 통일 예멘의 수도 사나를 점령했다. 반군은 예멘 정부를 축출하고 나라 대부분을 장악했다. 시아파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사우디와 미국 등이 개입하면서 내전은 확대됐다. 시아파 맹주 이란은 후티 반군을, 수니파 맹주 사우디는 예멘 정부를 각각 지원하고 있다.
지도자 압둘 말리크 알 후티는 이들 연합군을 상대로 싸우며 조직의 세력을 키웠다. 후티가 전사 2만명을 거느리며 이란으로부터 드론, 탄도 미사일 등 각종 무기를 확보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다. 이들 무기는 그간 사우디 등을 타격하는 데 사용됐다. 최근 세계 주요 무역로인 홍해를 오가는 선박을 공격하는 데도 동원되고 있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수수께끼의 지도자'로 불리는 압둘 말리크 알 후티는 과거 시골 민병대에 불과했던 후티를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반군 조직으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홍해의 바브 알 만데브(Bab al-Mandab) 해협은 아프리카 대륙 동부의 반도인 '아프리카의 뿔'과 아라비아반도 사이에 끼어 있는 폭 32km의 해협이다. 인도양 북서부의 아덴만에서 홍해로 가는 관문이다. 해협은 동쪽으로는 예멘, 서쪽으로는 에리트레아, 지부티와 접해있다.
'밥 알 만데브'라는 명칭은 아랍어로 '슬픔의 문' 또는 '눈물의 문'이란 뜻이다.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이 해협이 매우 위험한 항로라는 점을 시사한다. 지난 수천년 동안 수많은 배가 암초가 많고 강한 역류가 흐르는 이 좁은 해협에서 난파되었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도 선박들로 북적인다. 유럽-수에즈 운하-홍해-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항로이기 때문이다. 유조선 등 전 세계 선박의 4분의 1이 이곳을 통과한다.
지난해 10월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나자 후티 반군은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선언했다. 11월 중순 하마스를 지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밥 엘 만데브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미영 연합국은 후티 반군을 공습했지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후티는 이동장비를 이용해 무기를 숨겼고, 군사시설은 지하에 있는 상태여서 후티의 공격 능력 중 20~30%가량만 손상 내지 파괴됐다는 분석이다. 되레 후티 반군이 미국과의 군사 공방으로 예멘 및 중동 지역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렇게 후티가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는 이유는 이란이 주도하는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을 적극적으로 돕는다는 이미지를 구축해 예멘 국내외에서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실제로 후티는 가자전쟁을 이용해 전 세계에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아랍권에선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짱 뜨는 후티를 지지하는 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후티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만만히 볼 적이 아니다. 내전을 통해 전투 경험을 상당히 쌓았고 무기 수준도 높다. 사정거리가 2500㎞에 이르는 중거리 미사일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후티 반군이 선박을 공격하는 것을 막을 효과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너무 강경하게 공격하면 전쟁은 확전되고, 이로 인한 홍해 물류 중단은 세계 경제를 황폐화시킬 수 있다. 반대로 단호한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자신이 약하다는 메시지만 보낼 뿐이다.
후티 반군의 부상은 국제 질서의 중대한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홍해에서의 후티 반군의 활동이 국제법과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붕괴시킬 수 있는 요소 중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온한 시기가 끝나고 복잡하고 불안한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역사의 전환점 중 하나를 후티 반군이 찍게될 지도 모를 일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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