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의 돌발史전] '분노 사회'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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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경찰청 유튜브 채널에 한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경기도의 한 복지시설에서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관계자의 말에 격분한 한 남성이 흉기를 꺼내 난동을 부려 출동한 경찰이 제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게 과연 그렇게 분노할 일이었을까요? 아마도 그 사람의 내면에 평소 쌓이고 쌓였던 울화가 담배를 나가서 피우라는 말 한 마디를 계기로 표출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거리에서 간혹 이렇게 누적된 분노를 발산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우리 자신도 때로는 그렇게 하고 싶지만 참고 또 참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노로부터 자기를 억제하려면 타인이 노했을 때 자세히 관찰해 보라.”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요? 흉하고 독살스러운 ‘화’는 그것을 내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를 돌아볼 때 또 다시 화가 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화는 화(火)인 동시에 화(禍)인 것입니다.
김열규(1932~2013) 계명대 석좌교수는 ‘한국인의 화’라는 책에서 이렇게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누구나 마음속에 언제 터질지 모를 ‘화의 뇌관’을 안과 사는 ‘만성 화증의 사회’라는 것이죠. ‘승강기를 타고 내릴 때 서로 밀치기는 예사요, 뒷사람 생각해서 문짝 잡고 선 사람 보기 힘든 이 사회의 문제는 이기적 욕망과 쾌락의 추구에서 비롯됐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좀 생각해 봤습니다. 그 ‘이기적 욕망’과 ‘쾌락의 추구’라는 게, 지나가면서 마주오는 사람과 부딪치거나 발을 밟아 사과 한 마디 못 하게 할 정도로 뻔뻔스러운 것일까요? 지하철이나 마을버스같은 잠시 스치고 지나갈 공공장소에서 옷깃 맞대며 앉거나 선 사람들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다리를 마음대로 꼬거나 좌석을 2인분 차지하고 마음대로 떠들어도 될 정도로 욕망과 쾌락이란 것이 당당하고 떳떳한 것일까요?
화는 한마디로 쏟아지는 불입니다. 어느덧 한국에서 비롯된 이 정신신경 장애증상은 질병으로 공인돼 버렸습니다. 결국 ‘화’는 ‘화(和)’로써 다스려야 하고, 또 다른 나인 남을 존중하면서 자연 속에 그것을 묻어버려야 한다는 것이 김열규 교수의 논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화를 푸는 방법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뜰의 꽃향기를 맡으면서 몇 송이 꽃을 따 녹차에 물을 붓고 끓는 물에 띄운 뒤 다기의 온기를 몸으로 맡으면서 차를 입에 머금는다.”
아, 정말 이렇게 하면 화를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물이 왜 이렇게 느리게 끓어! 녹차가 왜 이렇게 뜨거워! 어디 녹차길래 이렇게 맛이 없어! 꽃잎 때문에 마시기가 불편하잖아! 뭐 이렇게 분노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과연 누가 누구에게 분노할 일을 저지르고 그것에 분노하는 것일까요? 오래 전에 한 연예인이 예능프로그램 녹화를 하다가 중태에 빠지자 시청자들은 “무분별한 시청률 지상주의가 이런 사태를 불렀다”며 개탄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분별하게 시청률을 올리도록 TV를 봐 주는 사람은 누구이며, TV가 무분별하게 시청률을 올린다고 화를 내는 사람은 도대체 또 누구란 말입니까? 이제 화를 내는 게 나로 하여금 화를 내게 하는 저 사람인지, 나로 하여금 화를 내게 하는 저 사람 때문에 화를 내야만 하는 내 자신인지 도무지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주자(朱子)가 쓴 ‘근사록(近思錄)’은 이렇게 말합니다.
懲忿如救火, 窒慾如防水.
(징분여구화, 질욕여방수)
분노를 억제하기를 불을 끄듯이 하고, 욕심을 막기를 물을 막듯이 하라.
네, 설사 그런 경지에 이르더라도, 불을 끈 뒤 타고 남은 잿더미를 어떻게 수습할지가 문제로 남을 겁니다. 다 씻어버려야 다시 불이 붙지 않고, 담배를 나가서 피워 달라는 말에 흉기를 꺼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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