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조은아]佛 ‘공짜 공교육’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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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어린이집에 다니던 둘째가 지난해 9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립 유치원에 입학했다.
어린이집 친구들 중 둘째와 같은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이 적어도 한둘은 될 줄 알았다.
이 동네에 사는 친구들은 공립에 지원하면 행정구역상 정해진 한 유치원에서 만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이 사실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공교육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바람에 공립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의 분노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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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시설 투자 없으면 학부모 외면
하지만 둘째는 유치원에서 어린이집 친구들을 한 명도 마주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다른 아이들은 전부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사립 유치원들을 선택했다. 학부모들은 “입학 몇 년 전부터 미리 지원하느라 애 먹었다” “인기가 너무 많아 과밀 학급이 됐다”고들 했다. 반면 동네 공립 유치원엔 오히려 자리가 남고, 인근 다른 한 곳은 문을 닫는다는 소문까지 돈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간극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최근 프랑스는 이 간극을 다른 누구도 아닌 교육부 장관이 ‘공식화’했다. 지난달 새로 임명된 아멜리 우데아카스테라 장관은 아들 셋을 공립학교가 아닌 사립학교에 보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게다가 그는 이 사실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공교육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바람에 공립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의 분노를 샀다.
원래 프랑스에서는 공교육이 자국의 저출산을 해결하는 해법으로 꼽혔다.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3∼16세 아이들을 국가가 의무적으로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6시까지 돌봐주는 훌륭한 육아 인프라다. 심지어 기본 학비는 무료다.
하지만 저렴하고 넉넉한 공교육 서비스는 갈수록 질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2022년 교육 평가지표인 ‘사회적 지위 지수(IPS)’ 상위 10% 중학교 중 사립이 60.9%였다. 상위 100대 중학교 중에선 81%가 사립이었다.
공교육이 붕괴된 원인으로는 교사 양성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교사들은 근무 여건이 열악한데 처우는 좋지 않다. 초등학교 교사 1명당 학생 수는 2019년 기준 18.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14.5명)를 훨씬 웃돈다.
반면 초등학교 15년 경력의 교사가 받는 급여는 연평균 3만7700유로(약 5400만 원)로, 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해 약 20% 적다. 자연스레 우수한 교사들은 임금 조건이 훨씬 좋은 사립학교로 향한다. 여기에 이민자들이 많은 지역 공립학교는 투자에서 소외되며 우수한 교사들의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공립학교들이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혜택을 줘야 한다’는 지나친 평등주의에 갇혀 경직된 채 운영되는 점도 문제다. 예컨대 공립학교 학부모는 학교를 선택할 권한이 없어 행정구역상 정해진 곳으로 자녀를 보내야 한다. 이렇다 보니 공립학교들 간에 학생 유치를 위한 경쟁이 일어나질 않고, 이는 교육의 하향 평준화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최근엔 학교를 민영화하면서 정부가 부족한 부분을 바우처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저렴하고 넉넉한 공교육의 숨겨진 진실을 한국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도 저출산 대책으로 공교육 확대를 꾀하고 있다. 최근에는 초등 1학년의 돌봄교실 운영 시간을 오후 8시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부모들이 아이를 저렴하게, 오랫동안 안심하고 공교육에 맡기도록 배려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정책이 발표된 뒤 벌써부터 돌봄 교사는 물론이고 돌봄 시설도 부족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양질의 교사가 제대로 된 시설에서 아이들을 안정적으로 돌보지 못한다면, 학부모들은 다시 사교육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내실 없이 공보육의 양적 확대에 치중하는 겉치레 대책은 더 큰 실망과 반발만 일으킬 뿐이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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