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2024. 2. 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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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중립·독립성 지키기
법관 스스로 노력이 최우선

최근 사법행정권의 남용이라는 혐의로 재판을 받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거의 5년 만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에 관여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제 1심이 끝난 사건에 대하여 왈가왈부하기는 어렵지만, 사법농단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법 적폐 청산이라는 구호로 사법개혁이라는 기치를 내걸며 요란을 떨었던 사건에 비하면 법원의 판단은 허무할 정도여서 씁쓸하다.

이 사건은 당시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져 주었지만, 사법부 자체에도 큰 충격을 주면서 다수의 판사가 법원을 떠났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실무 경험이 많고 유능한 법관들이 자진하여 사직하였다. 이후 특정 성향의 판사들이 고속 승진하면서 사법부를 주도하였다. 또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하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하는 등 사법부의 조직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김상겸 동국대 명예교수·헌법학
사법개혁은 우리 사회의 오랜 화두였다. 과거 권위정부 아래에서 인사권에 영향을 미쳤던 정치권력으로 인하여 사법부는 여러 방면에서 오랫동안 국민의 불신을 받았다. 물론 소신껏 사법정의를 위하여 노력하는 다수의 판사가 있었지만, 사법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또는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용어가 횡행하는 가운데 국민의 원성과 비웃음을 받았다. 정치적으로 독립해야 하는 법원은 일부 법관의 정치화로 인하여 불신을 자초하기도 하였다.

사법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을 내세웠던 이 사건으로 인하여 사법부의 정치화는 오히려 심화했다. 이 사건 이후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가진 소수의 법관이 사법 조직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이 중에서 일부는 정당 공천을 통하여 국회에 진출하였고, 몇몇 법관은 법복을 벗고 행정부로 자리를 옮겼다. 법관이라고 자유롭게 이직을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법부의 구성원이 입법부나 행정부의 구성원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하여 사직하는 것은 권력분립 원칙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사법부가 이런 혼란을 경험하는 것은 사법권력을 이용하려는 정치권력에도 문제가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사법부 구성원의 일부가 정치화를 통하여 스스로 사법권의 독립을 해치는 것이다. 국가의 최고 규범인 헌법은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 양심으로 독립하여 심판할 것을 규정함으로써 사법부의 독립을 선언하고 있다. 헌법은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함으로써 사법부에 정치적 중립을 준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법부는 입법부·행정부와 달리 헌법으로부터 독립성을 직접 보장받고 있다. 헌법이 명시적으로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는 것은 사법부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고 국민을 위한 것이다. 사법부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하는 이유는 재판 절차를 통하여 법적 분쟁의 시시비비를 가려서 결정하는 국가권력이기 때문이다. 즉 사법부의 독립이 먼저 보장되어야 재판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법부는 판결에서 일관성을 잃어버리고 사안에 따라 형평성이나 공정성을 보여 주지 못하여 국민의 비판을 받곤 하였다. 특히 이 사건 이후 사법부는 특정 정치적 사건에서 재판이 지연되거나 편파적으로 재판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사법권의 독립은 입법권이나 행정권으로부터의 독립뿐만 아니라 사법부 내부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하다. 물론 국민의 여론으로부터도 독립하여 재판해야 한다. 그러나 사법부의 독립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치적 중립과 독립이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또 다른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사법부의 독립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법관 스스로 그 독립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도 구성원이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사법부의 독립은 보장되지 않는다. 사법권도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국가권력일 뿐이다. 사법부는 빨리 폐해를 청산하고 인사와 제도를 정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독일 법원의 판결문 상단에는 ‘국민의 이름으로’라는 문구가 있다.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국민의 이름으로 재판해야 한다.

김상겸 동국대 명예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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