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신냉전이라는 착각
경쟁적 공존 위한 주도권 싸움
이분법적 인식, 우리 시야 좁혀
불확실성 상쇄 전략 마련 필요
흔히 지금의 국제 정세를 ‘신냉전’이라 표현한다. 과연 이것이 현재의 국제 정세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는가? 한국과 같이 강대국 경쟁에 대응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역사적 비유가 대외정책을 형성하는 근거로서 유용한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국 관계의 성격 때문에 여전히 한국이 미·중 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거나, 방향성 없는 균형외교를 펴야 한다거나,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를 배제한 민족주의적 접근법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특히 2024년의 시점에서 국제 정세를 살펴볼 때, 중국은 분명 현재의 강대국 경쟁에서 중요한 행위자이긴 하나, 유일한 행위자는 아니다. 지금의 국제 정세는 신냉전이 아닌, 2차대전 직전의 전간기에 근접해 가고 있다. 냉전기란 전간기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2차대전으로 이어지고, 전시 외교를 통해 미국과 영국, 소련 등 강대국들이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성한 이후 등장한 시기이다.
그렇다면 전간기의 상황은 어떠한가? 전간기 이탈리아, 독일, 일본은 현상변경 국가로서 강압과 폭력을 통해 각 지역에서의 우위를 달성하고자 했다. 국제연맹은 이들 국가의 행동을 예방할 수 없었고, 시장경제 체제의 자기 조정 능력 실패로 인해 경제 공황이 등장했다. 이러한 자유주의 제도의 붕괴 과정에서 파시즘이 등장했고, 현상변경 행위를 강화했다. 더욱이 지리적 거리로 인해 연합하지 않을 것 같던 세 국가는 미국과 연합국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하기 시작했다. 결국 2차 ‘세계대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지금의 국제 정세는 미·중 간 신냉전이라기보다 이와 같은 전간기와 더 많은 유사점을 보인다. 문화전쟁과 소득 불평등의 확대 속에 극단주의와 선동,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한편 기존의 민주주의는 이를 완화하지 못하고 있다. 현상변경 의도를 보이는 북한과 러시아, 이란과 중국의 제휴가 가능한 상황이 되어 가고 있으며, 유엔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비록 지금의 현상변경 수준은 과거 일본, 독일, 이탈리아에 비교할 수 없지만, 현재 상황은 분명 신냉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신냉전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은 우리의 대외적 시야를 좁게 만들며, 전 세계적인 변화의 흐름을 인식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주의 질서의 쇠퇴는 단순히 미국만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간기의 상황으로 회귀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은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한국은 스스로가 보유한 역량과 외교 안보적 자산 등을 최대한 활용하며 지금의 불확실성을 상쇄할 필요가 있다. 동맹 협력과 유사 입장국과의 네트워크 확대, 가치 외교와 규칙 기반 질서의 강화 등 지금의 노력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지속해야 할 것이다.
정구연 강원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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