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신냉전이라는 착각

2024. 2. 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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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갈등 생존 건 전쟁 아냐
경쟁적 공존 위한 주도권 싸움
이분법적 인식, 우리 시야 좁혀
불확실성 상쇄 전략 마련 필요

흔히 지금의 국제 정세를 ‘신냉전’이라 표현한다. 과연 이것이 현재의 국제 정세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는가? 한국과 같이 강대국 경쟁에 대응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역사적 비유가 대외정책을 형성하는 근거로서 유용한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 냉전기의 특징은 유의미한 강대국으로서 미국과 소련이라는, 체제를 달리하는 두 개의 국가가 존재했다는 것이고, 이 두 국가는 체제의 차이가 각자의 생존에 위협이라고 인식했다. 그러한 체제가 전 세계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봉쇄정책을 추진했다. 반면 지금 중국은 미국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중국은 오히려 미국 주도의 질서 속에서 강대국으로 부상했고, 미·중 관계는 높은 경제적 상호 의존으로 인해 봉쇄정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핵심 과학기술을 중심으로만 미·중 간 수출 통제와 공급망 재편이 이뤄지는 상황이 단적으로 이를 보여 준다.
정구연 강원대 교수·정치외교학
그렇다면, 과거 소련이 붕괴했듯 중국이 붕괴하는 상황이 미국이 선호하는 강대국 경쟁의 결과일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리들이 여러 번 강조했듯, 미·중 간의 ‘경쟁적 공존’이야말로 양국이 선호하는 결과이다. 미·중 간 전면전은 감내할 수 없는 정치·군사·경제적 비용을 수반하게 될 것이기에 양국 간 위기 고조의 상황을 억제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선택지일 것이다. 요컨대 현재의 미·중 경쟁을 신냉전이라 규정짓는 것은 두 국가의 전략이나 상호작용의 양상을 고려해 볼 때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국 관계의 성격 때문에 여전히 한국이 미·중 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거나, 방향성 없는 균형외교를 펴야 한다거나,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를 배제한 민족주의적 접근법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특히 2024년의 시점에서 국제 정세를 살펴볼 때, 중국은 분명 현재의 강대국 경쟁에서 중요한 행위자이긴 하나, 유일한 행위자는 아니다. 지금의 국제 정세는 신냉전이 아닌, 2차대전 직전의 전간기에 근접해 가고 있다. 냉전기란 전간기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2차대전으로 이어지고, 전시 외교를 통해 미국과 영국, 소련 등 강대국들이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성한 이후 등장한 시기이다.

그렇다면 전간기의 상황은 어떠한가? 전간기 이탈리아, 독일, 일본은 현상변경 국가로서 강압과 폭력을 통해 각 지역에서의 우위를 달성하고자 했다. 국제연맹은 이들 국가의 행동을 예방할 수 없었고, 시장경제 체제의 자기 조정 능력 실패로 인해 경제 공황이 등장했다. 이러한 자유주의 제도의 붕괴 과정에서 파시즘이 등장했고, 현상변경 행위를 강화했다. 더욱이 지리적 거리로 인해 연합하지 않을 것 같던 세 국가는 미국과 연합국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하기 시작했다. 결국 2차 ‘세계대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지금의 국제 정세는 미·중 간 신냉전이라기보다 이와 같은 전간기와 더 많은 유사점을 보인다. 문화전쟁과 소득 불평등의 확대 속에 극단주의와 선동,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한편 기존의 민주주의는 이를 완화하지 못하고 있다. 현상변경 의도를 보이는 북한과 러시아, 이란과 중국의 제휴가 가능한 상황이 되어 가고 있으며, 유엔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비록 지금의 현상변경 수준은 과거 일본, 독일, 이탈리아에 비교할 수 없지만, 현재 상황은 분명 신냉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신냉전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은 우리의 대외적 시야를 좁게 만들며, 전 세계적인 변화의 흐름을 인식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주의 질서의 쇠퇴는 단순히 미국만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간기의 상황으로 회귀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은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한국은 스스로가 보유한 역량과 외교 안보적 자산 등을 최대한 활용하며 지금의 불확실성을 상쇄할 필요가 있다. 동맹 협력과 유사 입장국과의 네트워크 확대, 가치 외교와 규칙 기반 질서의 강화 등 지금의 노력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지속해야 할 것이다.

정구연 강원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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