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그림과 대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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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이혼해서 혼자 살게 될 예정인 중년 남자와 앞으로 달라질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계획 하나를 내게 들려줬다.
"집을 새로 구하면 내 마음에 쏙 드는 회화 작품 하나를 거실 벽 가운데에 걸어 둘 거예요. 텔레비전은 놔두지 않을 거고요. 그 작품을 친구 삼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 보고, 그림이 내게 하는 말도 들어 볼 겁니다. 그러다 보면 나 자신을 더 알게 되고, 마음도 평온해질 것 같아요." 그는 말 못하는 그림이 벽 위에서 심오한 가르침을 건네줄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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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 너머를 보기 위한 노력도 필요
깨달음은 텍스트로만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인생의 의미를 유튜브 동영상 강의로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 봐도 그만, 안 봐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 없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이나 보면서 남은 인생을 축내고 싶지는 않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 인간은 이미지의 힘을 이용해 정신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바실리 칸딘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미술) 작품의 정취는 관람자의 감정을 깊고 깨끗하게 해 준다. 이러한 작품들은 영혼이 거칠어지는 것을 막아 주며, 마치 소리굽쇠로 악기의 현을 조율하듯 영혼의 음조를 맞추어 준다.” 이 위대한 미술가의 명언을 그가 이미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혼자 살면서 겪게 될 심적 동요를 미술로 붙들어 보려고 했던 것일 테다.
미술에는 심혼에 닿는 길을 터 주는 힘이 있다. 선과 색으로 부드럽게, 때로는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당신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는가?” 하고 우리의 눈에 말을 걸고, 우리는 눈으로 그 이야기를 듣는다. 그림이 실제 자신과 이상적 자기를 반영하는 거울인 셈이다. 탁월한 작품은 침묵의 언어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해답을 제시해 준다. 이건 모두 심리치료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하다. 예술을 통해 이런 깨우침을 얻으려면, 보이는 것 너머를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세계적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을 받고, 그림책 ‘구름빵’을 쓰고 그린 백희나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가 했던 말 중에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문장이 있다. “사회적 인간보다는 장인(匠人)이 되고 싶었다.” 아, 내가 항상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던 생각인데, 이렇게 간단히 표현하다니. 감탄했다. 나의 지향점도 그렇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모두 장인이라고 불릴 만한 이들이다. 내가 정의하는 장인은 ‘목표를 향해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본질에 닿기 위해 매일 똑같은 일을 수양하듯 계속한다.
폴 세잔은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의 하늘과 산 곁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붓을 들었다. 오전은 작업실에서, 오후에는 야외에 나가 작업하는 것이 죽을 때까지 반복된 한결같은 일과였다.
그는 풍경에서 정돈하는 힘을 느끼고, 땅과 바위에서 정돈의 원리를 발견했다. 대상의 형태를 이루는 본질적인 구조를 자연에서 찾고자 했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 중 하나가 ‘생트빅투아르 산’이다. 그가 새로이 발견한 세계를 선과 색으로 캔버스에 펼쳐 놓기 위해 ‘생트빅투아르 산’을 그리고, 또 그리기를 반복했다. 시각적 아름다움에서만 이 작품의 가치를 찾아선 안 된다. 목표를 향한 세잔의 끊임없었던 헌신의 현현이며, 그가 지녔던 장인 정신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에 위대한 예술품인 것이다. 이 그림은 언제나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고 소리 없이 내게 묻는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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