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 말고 정책] 재생에너지 로드맵 실종…이대로 가면 경쟁력 있는 산업 ‘탈한국’ 못 막는다
재생에너지 비중 낮춘 정부, 원전 포함한 CF100까지 추진…국제적 망신 우려
탈석탄 로드맵도 현실성 결여…국내 반도체·배터리 공장 해외 이전 땐 중기도 타격
RE100은 ‘재생에너지 전기(Renewable Electricity) 100%’의 약자로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2050년까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한 전기로 충당한다는 개념으로,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기후그룹(Climate Group)의 주도로 2014년 시작된 자발적인 글로벌 캠페인이다. 현재 RE100에 가입한 글로벌 기업은 400개 이상이며, 2022년 7월 현재 삼성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롯데칠성 등 21개 국내 기업도 RE100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RE100 이행은 2050년 일어날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현재진행형인 사건이다. RE100에 가입한 기업들의 평균 달성 목표 연도는 2030년이다. 또한 기업이 직접적으로 또 에너지 사용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출하는 탄소뿐만 아니라 협력사의 제조와 물류 과정, 유통, 폐기 등 공급망에서 배출되는 탄소 전체(스코프3 배출량)를 포괄해 RE100을 구현하겠다는 글로벌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2년 국내 30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해외 거래처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제품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받은 기업이 이미 30%에 육박했다. 특히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자동차 부품과 관련해 글로벌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이용을 조건으로 내거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KOTRA ‘해외 기업의 RE100 이행 요구 실태 및 피해 현황 조사’에 따르면 BMW, 볼보 등 유럽 자동차 기업들이 RE100 이행을 이유로 한국 부품사들과 맺은 계약을 잇따라 취소했다. 글로벌 서버 1위인 델테크놀로지스와 MS는 2030년까지 스코프3 배출량을 각각 45%와 50% 감축하겠다고 하고, 애플과 아마존웹서비스(AWS)는 각각 2030년, 2040년까지 스코프3를 포함한 RE100 달성을 선언했다.
그러나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여전히 미미하고, 주요 산업들이 RE100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 로드맵도 부재하다. 윤석열 정부는 제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10차 전기본)에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30.2%에서 21.5%로 낮추고, 23.9%로 낮춘 원자력 비중을 10%포인트 정도 높은 32.8%로 올리겠다고 제시했다. 나아가 RE100 대신에 원전을 포함한 CF100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CF100 추진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망신만 당한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의 재탕이 될 것이고, 그 후과는 제조업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탄소중립 이행의 핵심인 탈석탄 로드맵도 현실성이 없다. 10차 전기본에 따르면, 2030년과 2036년에 석탄발전 비중을 각각 19.7%와 14.4%로 유지하고, 화력발전을 LNG발전으로 바꾸고 궁극적으로 수소발전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화력발전소 폐쇄로 탈석탄을 달성하는 세계적 추세와 달리, 경제적 수명의 반도 안 쓰는 단기적 LNG발전을 거쳐 가장 비싸고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수소발전으로 전환한다는 비현실적인 계획이다. 미국 메릴랜드대 글로벌 지속가능성센터는 한국이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5년까지 모든 석탄발전을 종료해야 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탄발전 종료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은 아직 정부도, 여야 정당들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이대로 가면 경쟁력 있는 산업과 대기업들은 국외로 공장을 이전할 것이다. 삼성전자는 2021년 현재 국내에선 전력 수요의 2.7%만 재생에너지로 사용하고 있으나 미국과 중국 사업장에서는 이미 RE100을 실현하고 있다. 또한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 중이고 텍사스 테일러에 신규 공장을 건설 중인데, 앞으로 20년간 텍사스에 반도체 공장 11곳을 신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전기차 배터리 회사들의 해외 공장 이전도 진행형이다. SK온은 자동차 배터리 공장을 헝가리에 지었고, LG에너지솔루션도 폴란드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산업 공동화를 막고 국내 중소기업들의 줄도산을 막기 위해 RE100 대응과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구체적 계획이 필요하다. 그린 산업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을 통해 제조업 위기와 RE100에 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동남권에 RE100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산업정책도 필요하다. 이곳에 반도체, 2차전지, 자동차 부품 등의 주요 기업들을 유치하고, 필요한 재생에너지 공급을 위한 분산형 전력공급망 구축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제조업 붕괴도 지방소멸도 막을 수 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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