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 아들 사건’서 증거 인정된 ‘몰래 녹음’… 교육계 반발 [사건수첩]

오상도 2024. 2. 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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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파일’ 증거능력 두고 상반된 입장…갈등 격화
法 “정당행위로 인정…위법성 조각 사유 존재해”
주씨 “당시 녹음 외 어떤 방법 있나…모두 고민할 문제”
교육계 “불신의 판도라 상자 열었다…신뢰 무너질 것"

웹툰 작가 주호민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에 대해 1심 재판부가 유죄 판단을 내렸다. 논란이 된 주씨 측의 수업 중 ‘몰래 녹음 파일’에 관해선 “장애아동 학대 정황이 녹음 외에는 확인이 어렵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교원단체들은 “현실을 외면한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수원지법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는 1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특수교사 A씨에 대해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가벼운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2년이 지나면 없던 일로 간주하는 판결이다.
웹툰 작가 주호민이 1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주 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 A씨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후 법원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법원 “특수교사의 미필적 고의도 인정”…피고인 항소 방침

곽 판사는 쟁점이 된 녹음 파일(녹취행위)에 대해 “정당행위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통신비밀보호법이 규정하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에 해당한다”면서도 “녹음행위에 위법성 조각 사유가 존재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피해자가 4세 때 자폐성 장애인으로 등록된 점 △인지능력이 떨어져 아동학대 범행을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었던 점 △피해자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고 느껴 신속한 확인이 필요했던 점 등을 거론했다.

아울러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어린이집이나 방어·표현 능력이 있는 학생들의 수업이 이뤄진 교실과 달리 CCTV가 설치되지 않은 맞춤 학습실에서 소수의 장애 학생만 피고인의 수업을 듣고 있었으므로 말로 이뤄지는 정서학대의 특성상 녹음 외에 학대 정황을 확인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A씨는 2022년 9월13일 경기 용인시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주씨의 아들(당시 9세)에게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아휴 싫어. 싫어죽겠어.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고 발언하는 등 피해 아동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를 받는다. 주씨 측은 당시 아들 외투에 녹음기를 넣어 학교에 보낸 뒤 녹음된 내용 등을 토대로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사진=연합뉴스
곽 판사는 정서학대와 관련해선 피고인의 여러 발언 가운데 녹취록의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너 싫다고”라는 부분에 대해서만 유죄로 판단했다. 그는 “이런 발언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피해자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표현들이고, 그 과정에서 ‘너’, ‘싫어’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표현을 반복적으로 섞어 사용함으로써 그 부정적 의미나 피고인의 부정적 감정 상태가 그대로 피해자에게 전달됐을 것”이라며 “피해자의 정신건강과 발달을 저해할 위험이 충분히 존재하고, 특수교사인 피고인의 미필적 고의도 인정된다”고 했다.

반면 “밉상이네, 머릿속에 뭐가 들었어” 등 나머지 발언에 대해선 “혼잣말 형태로 짜증을 낸 것으로 학대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 판단했다. 그러면서 전체 수업은 대체로 피해자를 가르치고자 하는 교육적 목적 및 의도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A씨의 변호인은 1심 판결에 반발해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정에는 지난해 8월 입장 표명 이후 반년 가까이 침묵을 지켜온 주씨 부부도 참석해 선고를 지켜봤다. 이들은 담담한 표정을 내비쳤으며 주씨의 아내는 유죄 판결이 나오자 흐느꼈다. 피고인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일부 방청객은 야유와 탄식을 쏟아내기도 했다.
웹툰 작가 주호민이 1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주 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 A씨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주호민 “헌신하는 특수교사분들께 누가 되지 않길…여전히 무거운 마음”

주씨는 판결 이후 “열악한 현장에서 헌신하는 특수교사분들께 누가 되지 않길 바란다”며 “여전히 무거운 마음”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특수교사 선생님의 사정을 보면 혼자서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가중된 스트레스가 있었고 특수반도 과밀학급이어서 제도적 미비함이 겹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된다”며 “학교나 교육청에서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는데 (유사 사례 재발을 막기 위해선) 여러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에 대해선 “얼마 전 대법원에서 ‘몰래 한 녹음은 증거 효력이 없다’는 판결을 해 굉장히 우려했었는데,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자기 의사를 똑바로 전달할 수 없기에 녹음 장치 외에 어떤 방법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의사 전달이 어려운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들을 어떻게 하면 보호할 수 있을지 다 같이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씨의 설명에도 교육계는 반발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번 판결은 불법 몰래 녹음을 인정해 학교 현장을 사제 간 공감과 신뢰의 공간이 아닌 불신과 감시의 장으로 변질시키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했다. 전국특수교사노동조합도 성명을 통해 “아동학대를 인정하는 판결은 대한민국 공교육에 대한 사망 선고”라며 “앞으로 지도 대신 포기와 침묵을 택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경기도교육청 제공
초등교사노조는 “몰래 녹음 자료의 증거 능력을 인정한 1심 판결에 유감의 뜻을 밝힌다”고 했고, 전국교직원노조는 “교육 방법이 제한적인 특수교육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도 의정부 북부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특수교육 현장의 특수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임 교육감은 “재판부가 여러 상황을 고려해 판단한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몰래 녹음한 것이 법적 증거로 인정돼 교육 현장이 위축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경기도의 사건이지만 대한민국 특수교육 전체에 후폭풍을 가지고 올 수밖에 없다. 교육 현장에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라는 한탄의 말이 들린다”고 덧붙였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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