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한국의 칼텍’ 꿈꿨던 포스텍

김민철 논설위원 2024. 2. 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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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를 위해 포스텍 교내에 설치된 빈 좌대./조선DB
일러스트=이철원

프랑스 최대 국경일인 혁명 기념일에 파리의 개선문에서 콩코르드 광장까지 군사 퍼레이드가 열린다. 이 퍼레이드에는 언제나 ‘에콜 폴리테크니크’ 학생들이 선두에 선다. 이 학교는 사관학교가 아니다. 이공계 그랑제콜(고등교육기관) 중 하나다. 에콜 폴리테크니크 학생들이 선두에 서는 것은 나폴레옹 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프랑스가 얼마나 이공계 인력을 우대하고 존중하는지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프랑스 학생들은 지옥 같은 경쟁을 치른다.

▶이승만은 1907년부터 하버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공부할 때 근처에 있는 MIT를 방문했다. 이때 그는 미국이라는 거대강국의 힘이 과학과 공업에서 나온다는 것을 절절히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전쟁 중인 1952년 하와이 한인회관을 매각한 대금 등을 합쳐 ‘한국판 MIT’를 목표로 인하공대를 설립했다. 이 대통령이 국민소득 100달러 시절에 1인당 6000달러씩 국비를 써가며 238명을 유학 보낸 것도 나라가 죽고 사는 게 과학기술에 달렸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은 1985년 5월 칼텍(캘리포니아공대)을 방문했다. 이 대학은 짧은 기간에 우수한 연구 조건을 갖추고 뛰어난 학생과 세계 최고 연구자를 모은 대학으로 유명하다. 박태준이 “한국에 칼텍과 같은 대학을 만들고 싶다”고 하자 칼텍 부총장 얼굴엔 농담이 지나치다는 듯 웃음기가 번졌다. 칼텍을 모델로, 언젠가는 칼텍과 견줄 수 있는 대학을 목표로 1986년 문을 연 대학이 포스텍(포항공대)이다.

▶이후 포스텍은 포스코의 아낌없는 지원을 바탕으로 짧은 기간에 연구 중심 대학으로 자리 잡았다. 이공계열 학생들 사이에서는 서울대와 포스텍, KAIST를 묶어 ‘서포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94년 한 국내 대학 평가에서 1위에 오르고 1988년 한 홍콩 언론이 포스텍을 ‘아시아 최고 과학기술대’로 소개할 정도였다. 그러나 근래 포스텍은 개교 30년을 넘기면서 활력이 떨어지고 어느덧 시설도 낡아 쇠락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대학 평가에서 연세대, 고려대에도 뒤져 학내에서도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포스텍이 올해부터 10년간 학교법인 등에서 모두 1조2000억원을 투자받기로 했다. 세계 톱(top) 대학들과 경쟁하는 대학으로 거듭나는 것을 목표로, 국내 대학 역사상 최대 규모 투자를 받기로 한 것이다. 과학기술이 국가의 부와 미래, 생존까지 좌우하는 시대다. 한국에도 MIT와 칼텍이 생기고 그 대열에 포스텍도 이름을 올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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