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보다 뜨거웠다, 두 소방관의 사명감
“사람 더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주저없이 불길 뛰어들어 참변
1일 오전 8시쯤 경북 문경시 신기동 소재 제2일반산업단지 한 육가공공장. 전날 밤 발생한 화재가 진압된 지 8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4층짜리 공장건물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고 철골 구조물 곳곳은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소방펌프차의 거센 물줄기에도 화마의 열기는 제때 식지 않고 허연 연기를 쉴 새 없이 뿜어댔다.
진화작업을 벌이는 소방대원들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가득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든 20대와 30대 두 구조대원이 목숨을 잃어서다. 한 소방관은 “어둡고 뜨거운 현장을 누볐던 동료들이 이제는 밝고 뜨겁지 않은 곳에서 편히 쉬길 바란다”며 울먹였다.
처음 불이 난 건 전날인 지난달 31일 오후 7시47분쯤이다. 건물 3층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화마는 건물만 집어삼킨 게 아니었다.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소속 김수광 소방교(27)와 박수훈 소방사(35)의 생명도 앗아갔다. 이들은 화재 현장에 도착한 직후인 오후 7시58분에서 8시20분 사이 공장 내부로 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대피한 줄 알았지만 공장 관계자 1명이 공장 입구로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고서다. 인근 공장 관계자가 “안에 사람이 더 있을 수 있다”고 하자 이들은 주저없이 공장 출입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같은 팀 대원 2명과 4인 1조로 인명 검색과 화점 확인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진입 당시에는 불길이 거세지 않은 등 인명 검색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3층에서 갑자기 불길이 솟구쳤다. 함께 구조작업을 하던 대원 2명은 다행히 철수했지만 김 소방교와 박 소방사는 화염에 휩싸여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추가 구조 위해 내부 진입
발화점 3층서 화염 휩쓸린 듯
바닥층 무너지며 추락사 추정
2명은 창문 깨고 간신히 탈출
구조대 자원한 김수광 소방교
특전사 출신 박수훈 소방사
문경·예천 홍수 수색에도 참여
소방동료·가족들 빈소서 통곡
김 소방교는 2019년 7월 공개경쟁 채용으로 임용됐다. 동료 소방관들은 “재난 현장에서 위기에 처한 국민을 구하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화재 대응 능력을 키워왔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에는 소방공무원 사이에서도 취득하기 어렵다는 인명구조사 시험에 합격해 구조대에 자원했다.
박 소방사는 특전사 출신으로 ‘사람을 구하는 일이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2022년 소방공무원이 됐다. 미혼인 박 소방사는 “나는 소방과 결혼했다”고 이야기하고 다닐 만큼 소방조직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고 한다. 두 대원 모두 지난해 경북 북부를 강타한 집중호우로 실종된 문경시와 예천군 실종자들을 찾기 위한 68일간 수색 활동에도 참여했다.
소방 당국은 3층 계단실 주변 바닥층이 무너진 점 등으로 미뤄 두 대원이 추락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수색 과정에서도 건물 일부가 한 차례 붕괴한 탓에 대원들이 긴급 탈출 후 안전 점검을 한 뒤에야 재진입해야 했다.
순직 대원들이 발견된 곳은 서로 5m 정도 떨어진 지점이었다. 거리는 가까웠지만 건물이 무너지고 잔해가 상당히 쌓여 발견과 구조가 어려웠다. 배종혁 문경소방서장은 “탈출에 성공한 두 구조대원은 공장 건물 1층에서 창문을 깨고 나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며 “순직한 두 대원은 다른 누구보다도 모범이 되고 시범도 잘 보이는 훌륭한 이들이었다”고 말했다.
화재 현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무사생환’을 기원했던 소방대원의 가족들은 통곡했다. 동료 대원들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이날 화재 현장에 투입된 한 대원은 “모두가 동료를 잃은 슬픔과 미안함을 견디는 중”이라며 “누군가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고민 없이 몸을 내던진 동료의 숭고함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빈소가 마련된 문경장례식장은 침통함으로 가득했다. 이날 오전 빈소에 온 유가족들은 입구에서부터 오열했다. 슬픔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부축을 받은 채 빈소로 향했다. 일부 유가족은 빈소에서 실신하기도 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빈소를 찾은 한 소방관은 “생명을 구한다는 자부심으로 구조대에 직접 지원해서 가신 분들”이라면서 “늦은 나이에 소방관이 된 분도 있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김 소방교의 중학교 때 친구라는 한 남성은 “평소에 참 밝고 성격도 좋았다”며 “친구에게 고생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문경소방서 동료 김태웅 소방관은 “출퇴근할 때 (두 대원의) 모습은 항상 땀에 젖어있었다”며 “구조대원이 되기 위해 체력 향상과 함께 구조기술을 배우는 등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셨던 분들”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 정치권 인사들도 잇따라 빈소를 찾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오후 빈소를 방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순직 구조대원들에게 1계급 특진과 함께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영결식은 3일 경북도청 내 동락관에서 엄수될 예정이다. 고인들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애도와 경의를 표한다”며 “장례절차와 유가족 위로 등 모든 분야에 걸쳐서 최고의 격식을 갖춰 예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민간 건축 구조 기술사 2명과 소방관 3~4명 등 최소 인력만 건물 내부로 투입해 추가 붕괴 위험성 등을 분석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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