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역설적 치열함, 비호감 선거
새해 들어 야당 대표와 여당 국회의원이 습격을 당했다. 정치인은 원래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이다. 오죽하면 고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을 욕하는 것으로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고 말했겠나. 그러나 욕먹는 것과 생명을 위협받는 일은 다르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어떤 개인에 대해서도 합당한 이유 없이 폭력이 가해져선 안 된다. 그런 일이 공개적으로 대담하게 일어난다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적 공분이 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본래 정치란 한 사회의 갈등을 힘이 아닌 말을 통해 해결하려는 인간 행위다. 폭력이 아닌 말과 제도적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문명의 수준이 결정된다.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꼭 커다란 정치적 사안만은 아니다. 노사관계나 교육과정, 계약관계처럼 시장과 사회에서의 다양한 일들은 물론이고, 우리의 사적인 일상에서도 물리적 폭력이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동원되느냐가 문명의 척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사실 그러한 사안들에서 폭력이 동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과정이 바로 정치다. 이 점에서 본다면 정치는 그 본질에서부터 폭력과 가장 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늘 잘될 수만은 없다. 우리 정치에서도 욕설과 폭언은 물론이고 종종 물리적 대결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폭력적 언행을 정치의 일부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런 순간은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예외상태다. 정치가 멈춘 곳에서 폭력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럼 정치가 잘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대 민주주의는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정치를 제어하기 위해 ‘선거’라는 절차를 도입했다. 일정한 임기 동안 정치 권력을 부여했다가 잘못하는 것 같으면 교체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잘못해도 교체를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시민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도무지 교체될 가능성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주요 정치적 행위자나 정당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정치적 상대방이나 자당 내부의 이견 세력을 공격하는 것을 방치하거나 종용한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현재 한국의 정치는 양당 과두 독점체제다. 거대 양당이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는 정도보다 더 많은 권력을 누린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제도는 장단점이 있다. 우리가 현 제도와 체제를 유지하는 이유는, 권력 독점이라는 단점을 상쇄하는 양당 체제의 정치적 안정성과 효율성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보면, 국민들이 더 이상 현 제도나 체제를 유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 양당의 공천 과정을 보노라면 이것이 정치인지 시정잡배들의 거래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는 비호감 대선을 치른 지 2년 만에 비호감 총선을 앞두고 있다.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낮은데, 그 여론이 야당에 대한 지지로는 연결되지 않는 기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각 정당 내부의 이견 세력들은 탈당을 시도했다. 다수 언론에서는 이런 현상이 총선에서 빚어낼 결과에 대해 경마식 보도를 하고 있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양대 정당이 국민들을 실제로 대표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증명할 분수령에 우리는 서 있다.
이번 선거는 지난 대선처럼 실로 치열할 것이다. 많은 곳에서 박빙의 대결이 펼쳐질 것 같다. 거대 야당에 대한 견제, 정부 여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상대를 악마화함으로써 국민들을 가르고 소수의 열성 지지자들을 결집시켜 실로 처절한 전투를 벌일 것이다. 참으로 비호감이 극대화된 역설적 치열함이다. 치열한 승부의 결과는 어느 한쪽의 명백한 승리가 없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때 두 정당은 적대적 상호공존이라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기고 서로 속으로 웃을 것이다.
선거제도는 과두 독점체제를 유지시키는 여러 요인들 중 하나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기존의 제도나 체제가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완전히 규정해 버린다면, 그것은 시민에게 주권이 있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보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세력이 다른 수단이나 제도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던 많은 경우에 실패를 겪었다. 시민들은 때로는 직접 거리에 나와 문제를 해결했고, 때로는 제도적 압박을 넘어서는 놀라운 선거 결과로 상황을 바꿔놓기도 했다. 제도가 민심을 왜곡한다면 민심이 제도를 넘어설지, 그것이 주목된다.
이관후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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