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의 할매 열전] 산목숨인디 워쩔 것이냐, 살아야제
나는 어린 시절 학교만 파하면 작은고모 집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저녁을 먹는 일도 흔했다. 그 무렵 아버지는 감옥에 있었고, 우리집 식구라곤 엄마와 나뿐이었다. 작은고모네는 식구가 많았다. 위암 걸린 작은고숙,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건장한 아들 넷이 둘러앉으면 밥상이 꽉 찼다. 고모는 자기 식구들만 해도 비좁은 밥상에 염치도 좋게 끼어든 나를 한 번도 타박하지 않았다. 고모네 저녁은 매 끼니 칼국수였다. 멸치 육수에 감자를 잔뜩 넣고 끓인 고모네 칼국수는 단맛이 진했다. 단맛을 즐기지 않는 편인데도 당원이 들어간 고모의 칼국수를 나는 오빠들과 똑같이 큰 대접에 가득 받아서는 국물 한 모금 남기지 않았다.
“아가. 더 묵을라냐?”
당신들 먹을 것도 부족했을 텐데 고모는 매번 웃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어린 나는 배를 두드리며 꺼억 트림을 하곤 했다. 행복하고 충만했던 그 저녁 식사가 빈곤의 결과였다는 것을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고모는 언제나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고모가 가만히 있는 모습을 나는 보지 못했다. 작은고숙이 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아들 넷의 교육과 생계까지 고스란히 고모 몫이었다. 고모는 여수에서 건어물을 떼다 오일장에서 팔았다. 멸치며 미역을 판 돈으로 큰오빠는 교대에 진학해 교사가 되었다. 그래도 고모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가난한 집에서 겨우 교사가 된 장남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으리라. 오일장이 나날이 기울어 돈벌이가 시원치 않자 고모는 어린 막내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 남의집살이를 했다. 어느 날, 고모가 짐보따리를 들고 우리집을 찾아왔다. 손끝 야물고 부지런한 고모가 일 못한다고 쫓겨났을 리는 없을 터, 아버지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고모는 내로라하는 부잣집에서 식모를 살았다.
“아이고, 살다살다 그리 모진 사램들은 첨이요. 묵도 못흐고 썩어자빠진 것이 천지삐까린디 그거 쪼까 나놔줬다고 나헌티 도둑년이라고 안 허요. 하도 더러와서 때려치고 나와부렀소. 워딜 가든 내 한 몸 못 묵에살리겄소?”
아버지는 어린 아들 데리고 그만한 벌이 하기 어려우니 다시 돌아가라 고모를 타일렀다. 고모는 체머리를 흔들었다.
“나가 그 집서 몇년 더 살다가는 몸땡이가 남아나들 안 헐 것이네. 당뇨 걸린 시할매 밥상 따로 차레야제, 자석들 다 따로 묵제, 한 끼니만 여섯 번을 챙기요. 집은 또 오살나게 넓어야 말이제. 집구석에서 오도바이라도 타고 댕게야 할 판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에서 고모를 찾아왔다. 고모 말고는 그 많은 일 해줄 사람을 찾지 못한 것이다. 절대 가지 않겠다던 고모는 돈을 올려준다는 말에 결국 그 집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나올 때 고모의 모든 관절은 고장이 났다. 올해 아흔이 된 고모는 당뇨 앓는 둘째 오빠의 병수발을 들면서도 틈만 나면 공공근로를 나간다. 푼푼이 모은 돈, 손주들에게 주고 싶어서다. 좀 쉬시라 했더니 고모는 심상하게 말했다.
“죽으먼 썩어문드러질 몸땡이, 놀리먼 멋흘 것이냐?”
죽기 전에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며 엄마를 보러 온 고모는 직접 담근 고추장과 된장을 들고 왔다. 아파트 베란다에 볕이 잘 들어 맛이 괜찮을 거라며. 엄마와 도란도란 옛날이야기를 주고받던 고모가 눈시울을 훔쳤다.
“참말로 모진 시상을 살았제이. 뽈갱이 동생년이라고 시동생이란 놈이 월매나 무지막지허게 뚜딜게팼능가 나가 그때부터섬 이짝 귀가 안 들린당게. 시방도 누가 발만 들먼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디, 그때게 원체 씨게 놀래서 근갑서야.”
시동생이 형수를 패는 패륜을 저지르는데도 시댁 식구들은 못 본 척 외면했다. 시어머니는 치매에 걸린 채 구십 넘어 살았다. 고모가 노상 똥 싼 이불을 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세월을 어찌 견뎠냐고 물었더니 고모는 언제 울었냐는 듯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산목숨인디 워쩌겄냐. 살아야제.”
우리의 앞 세대가 산목숨이니 어쩔 수 없이 견뎌왔을 그 고난의 세월을, 나는 감히 상상조차 못하겠다. 우리의 오늘은 그들이 그렇게 견디며 살아낸 덕일 텐데 생각해보니 나는 내 부모나 고모에게조차 고맙다는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다.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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