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 구내식당 예찬
나는 구내식당을 좋아한다. 구내식당은 점심 메뉴를 선택하는 데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일반 식당보다 음식이 담백한 데다 영양사가 영양을 고려하기에 채소와 생선을 자주 먹을 수 있다. 집 밖에서 어떻게든 채소를 접하려는 나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하지만 대다수 회사 동료들은 구내식당을 타박한다. 맛이 밍밍하고 고기가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내가 구내식당을 좋아하는 이유와 정반대다. 그런 동료들이 좋아하는 메뉴는 제육볶음, 부대찌개, 돈가스같이 기름진 음식들이다.
내 기억에 남는 구내식당은 한때 내가 다녔던 한 대기업에 있는 것이었다. 반찬도 충실했고, 낮 12시 반에 가면 세트메뉴로 비빔밥이나 파스타가 나왔는데 꽤 괜찮았다. 대학 시절 소가 잠깐 건너간 듯한 학생회관 구내식당의 장국밥을 툴툴거리며 먹었던 나의 눈에 회사 구내식당은 완전한 신세계였다. 구내식당 덕에 회사에 뼈를 묻어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구내식당의 연원은 오래다. 지금도 공동체 정신이 유달리 강한 스웨덴·핀란드 지역에서 오후에 술과 함께 내놓았던 청어 샌드위치 상차림에서 유래됐다. 이게 16세기부터 스웨덴에서 상업화되면서 수프와 채소 등이 더해져 스뫼르고스보르드(샌드위치 보드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정착됐다. 이 상차림은 1939년 미국 뉴욕박람회에서 대중에게 인기를 끌면서 미국 사업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20세기 초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를 연 미국 기업들은 많은 직원들에게 식사를 공급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후 미국 기업들은 1940년대부터 이 스웨덴식 상차림을 대형화한 직원용 구내식당을 도입했다. 구내식당 문화는 군대, 대학 등 미국 전역으로 확대됐다. 이후 셀프서비스·대형화로 효율 제고와 비용 절감을 꾀한 구내식당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구내식당을 선호하는 나는 지금도 외부인에게 개방되는 구청, 도서관의 구내식당을 자주 찾는다. 얼마 전 국내에서 가장 큰 공기업 중 하나인 곳의 구내식당을 가봤다. 그런데 음식이 지나치게 달았다. 김치볶음과 무생채가 반찬으로 나왔는데 못 먹을 정도였다. MSG를 넣었는지 맛도 들큼했다.
요즘 요리 방송을 보면 김치나 깍뚜기에조차 설탕과 조미료를 넣으라고 당당히 말한다. 식사를 시키면 반찬이 공짜로 나오는 우리나라 식당 문화를 고려하면, MSG와 설탕 없이 소비자 입맛을 맞추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사원 복지를 중시해 비용 문제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구내식당마저도 설탕과 MSG를 듬뿍듬뿍 넣는 것이 안타까웠다. 일부 대기업은 아예 직원 복지 차원에서 햄버거나 마라탕을 구내식당에서 제공하기도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민감한 MZ세대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내식당의 경쟁 상대는 일반 식당이 아니다. 구내식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일반 식당과 다른 균형 잡힌 영양과 설탕·MSG에 휘둘리지 않는 균형 잡힌 맛이다. 구내식당은 한쪽으로 쏠린 트렌드로부터 노동자·학생들을 보호하는 음식 복지의 공간이 돼야 한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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