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08) 태평로
태평로(太平路)라는 길은 전국적으로 여러 곳에 있다. 대구 중심가에도 있고, 경기 성남시에도 있다. 누구나 꿈꾸는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지명으로 많이 쓰인 것이다. 서울에도 태평로가 있었다. 교보문고가 있는 세종대로사거리에서 서울시청과 숭례문을 거쳐 서울역에 이르는 길이 태평로였다. 2010년 광화문에서 세종대로사거리에 이르는 세종로와 합쳐져 ‘세종대로’가 되면서 태평로라는 길 이름은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서울 태평로의 이름은 숭례문 서북쪽의 현재 대한상공회의소 부근에 있었던 태평관(太平館)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태평관은 조선 초부터 임진왜란 때까지 명나라 사신이 머물던 숙소였다.
숭례문과 서울시청 사이의 태평로는 현재 서울 도심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가장 넓고 중요한 도로이지만, 그리 오래된 길은 아니다.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주된 남북 도로는 숭례문에서 동북쪽으로 활모양으로 휘어져 청계천을 건너 종각까지 이어진 남대문로였다. 그래서 숭례문을 통해 한양에 입성한 사람이 경복궁으로 가려면, 남대문로~종로~세종로를 이용해야 했다. 지금의 태평로는 1912년 일제에 의한 이른바 ‘경성시구개수(京城市區改修)’의 결과물이었다. 일제는 도성 안의 간선 도로망을 격자형으로 정비하여 조선의 전통적인 공간구조를 개편하려 했는데, 태평로의 ‘개수’도 그 일환이었다. 태평로 건설로 인해 당시 고종이 살던 덕수궁의 상당 부분이 훼손되었다. 일제는 새로 개설한 이 길에 ‘태평통(太平通)’이란 이름을 붙였다.
두 사진은 서울시청에서 숭례문을 향해, 즉 북쪽에서 남쪽으로 태평로를 찍은 것이다. 1971년 사진 앞쪽에 시원하게 물을 뿜고 있는 시청 앞 분수대는 2004년 서울광장을 조성하면서 사라졌다. 며칠 전 찍은 사진에서는 서울광장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71년에는 도로 중앙에 가로수를 심은 넓은 녹지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없어지고 모두 차가 다닌다. 그러나 도로 양옆으로 우뚝 솟은 고층 건물들로 인해 길이 예전보다 좁아진 것처럼 느껴지며, 멀리 있는 숭례문도 더 왜소해 보인다. 1971년 사진 왼쪽으로 낮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지역은 화교들이 많이 살던 북창동이다. 현재 사진에는 1976년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지어진 더플라자호텔을 비롯하여 많은 빌딩이 즐비하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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