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고공농성 노동자는 여성 강주룡 … "2024년에도 강주룡이 있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2024. 2. 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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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행하는 시대, 우리가 멈춘다]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우리가 그녀들 곁에 서자

2023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을 두고 한국 언론은 환호했습니다. 차별과 폭력, 저임금과 착취에서 벗어나려 한 아이슬란드 여성들의 파업은 성별임금격차를 비롯한 성차별을 개선하는 힘이었습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을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여성노동자들의 자리마저 삭제하려 합니다. 여성노동자들이 싸워 쟁취한 성과마저 지우려합니다. 이에 한국에서도 2024년 3월 8일 여성의 날을 여성파업으로 돌파하고자 합니다. 33개의 단체와 노조가 모여 2024여성파업조직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연재 기고 '역행하는 시대, 우리가 멈춘다'는 2024여성파업의 의미와 현재에 대해 말합니다.

"새벽에 공장 앞에 차가 서 있는데, 철거업체라는 거예요. 이러다 정말 공장에서 쫓겨나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평소 짐 싼 것만 들고 올라왔어요."
-소현숙 조직2부장

"오랫동안 싸웠는데 이대로 끝낼 수는 없잖아요. 누구라도 완강하게 버티는 싸움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결심했어요."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영하의 날씨에 구미 국가산업단지(이하 산단)에 위치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옵티칼) 공장의 9m 옥상에 박정혜, 소현숙 두 여성노동자가 오른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그녀들이 고공농성을 한 이유는, 회사가 2022년 10월에 화재가 나자 화재를 핑계로 한 달 후 공장을 문 닫는 것도 모자라 희망퇴직을 거부한 사람들을 고용승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옵티칼은 일본자본 니토덴코가 100% 지분을 가진 외국투자기업으로, 2003년 구미산단에 입주할 당시 50년 토지 무상임대, 법인세·취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받아 6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봤다. 그런데도 일본자본 닛토덴코는 화재가 나자 공장 문을 닫겠다며 희망퇴직을 받았다. 화재보상금 1300억 원을 받아 공장을 다시 열 수도 있는데 노동자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법인을 청산했다.

현재는 희망퇴직을 거부한 17명 중 11명이 공장 안에 천막을 치고 구미 공장 재가동과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평택에는 법인은 다르지만 니토덴코 계열사인 한국니토옵티칼 공장이 있다. 구미공장 청산 전에도 평택공장의 직원이 구미공장에 소속돼 일하거나 구미 직원이 평택에서 일하는 식으로 본사의 지휘가 가능한 공장이다. 즉 평택 니토옵티칼로 구미 옵티칼 노동자들의 고용승계가 가능하다. 그런데도 이들은 평택 공장 신규사원을 뽑으면서 11명의 구미 노동자들을 고용승계할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쉬는 날 없이 12년, 16년을 일한 두 여성노동자들은 배신감이 컸다. 회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일회용품처럼 노동자들을 버리다니, 싸울 수밖에 없었다.

더욱 기가 차는 일은 LG디스플레이에 납품하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물량을 평택공장인 한국니토옵티칼에서 대체 생산한 것이다. 평택공장은 삼성디스플레이에만 납품했다. 한국니토옵티칼의 대체 생산을 공급망 구축 자본인 삼성전자가 이를 모를 리 없지만 침묵하고 있다. 니토덴코의 부당물량도 있고, 노동자들이 가서 일할 공장도 있는데 회사는 철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노동자들보다 일본 자본만을 편드는 정부와 법원은 아직 부당노동행위 소송 중인데도 공장을 철거하겠다고 협박한다. 자주 철거업체와 경찰이 공장 주변을 돌고 있으니 이대로 쫓겨날 수 없다는 생각에 두 여성노동자가 공장 옥상에 오른 것이다.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의 9m 높이 옥상에서 고공농성 중인 소현숙 조직2부장과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옵티칼투쟁연대소통방(배현석)

2024년의 '강주룡'이 된 이유

가장 추운 날씨였던 1월 8일, 옵티칼 두 여성노동자가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한다고 하자, 몇몇 사람들이 묻는다. '왜 남자들이 안 올라가고 여자들이 올라갔냐'고. 너무나도 뻔한 성별 고정관념을 바탕에 둔 질문이다. 공장에 남아 싸우고 있는 11명의 노동자 중 6명이 여성이다. 성별 비율도 비슷하다. 기혼여부도 비슷하다. 여성은 극한투쟁을 하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박정혜 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부장은 한 번도 남성이 싸움의 맨 앞에 서야 한다거나, 여성은 뒤에서 보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저 상황과 여건에 따라, 결의가 되면 싸움의 앞에 설수도 있고 뒤에 설 수도 있을 뿐이다. 박 부지회장은 '왜 남성들도 있는데', '왜 여성인데' 올라갔냐고 질문하니 당황스러워했다. 한 번도 싸우면서 성별에 따라 위치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결사 항전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제가 여러모로 조건이 되니까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여자니까 뒤로 빠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래 공장에서 싸우나 위에서 싸우나 같은 거라고도 생각했고요."
-박정혜

"같은 부서에 12년을 같이 일했어요. 정혜가 올라가서 싸워야 하는데, 혼자는 어려울 것 같고 같이 가면 안 되겠냐고 묻더라고요. 좋다고 했어요. 혼자 고립되게 할 수는 없잖아요."
-소현숙

고개가 끄덕여진다. 노동운동이든 빈민운동이든 농민운동이든 남녀가 같이 싸우는데도 맨 앞에서 싸우거나 말하는 사람은 남성인 경우가 너무 많아 성별 고정관념이 생겼을 뿐이다.

사실 고공농성한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깝게는 영남대의료원에서 고공농성하던 여성노동자 박문진, 톨게이트에서 고공에서 싸우던 여성노동자 도명화, 크레인에서 싸우던 김진숙 ….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도 왜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은 그 흔적조차, 치열한 저항의 기록조차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지 안타깝다.

따지고 보면, 이 땅에서 최초로 고공농성하던 노동자도 여성이다. 1931년 임금 삭감에 반대하며 평양고무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강주룡은 대동강변 을밀대의 12미터 높이 지붕 위에 올라가 여성노동자의 파업을 알렸다.

물론 평양고무공장에도 한국인 남성노동자가 있었지만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여성에 대한 차별로 여성은 일본노동자의 1/4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임금을 깎겠다고 통보하자 49명의 노동자들이 단식투쟁을 벌였고, 그랬지만 회사는 이들을 해고하고 공장에서 내쫓았다. 강주룡은 사람들에게 싸움을 알리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결의한 것이다.

옵티칼의 사정도 평양고무공장의 사정과 다르지 않다. 돈도 있고 물량도 있고 일할 공장도 있지만, 회사는 고용승계를 하지 않았다. 일본자본 편만 드는 한국 정부는 물리력을 동원한 강제 철거 협박에 동조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 고공에서 결사항전을 하는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결의하고 오른 것이다.

그런데 법원은 고공에 올라가자마자 회사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주었다. 철거업체와 경찰이 매일 공장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현재 2월 16일 강제철거를 통보한 상황이다. 철거일이 예고된 상황이라 박 부지회장에게 마음이 어떠냐고 물었다.

"두렵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쉽게 끌려 내려갈까 걱정도 되고요."

▲2024년 3.8 여성파업조직위의 '찾아가는 오픈마이크' 한국옵티칼 하이테크지회 웹자보 ⓒ2024년 3.8 여성파업조직위

여성파업조직위가 구미로 간다

그래서 2024년 3.8 여성파업조직위는 투쟁하는 여성노동자가 있는 구미공장에서 투쟁의 이야기를 나누는 오픈마이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녀들 곁을 지킬 우리들이 있다고, 한마디 건네기 위해서다. 사실 수도권이 아닌 경우엔 결사 항전조차 세상에 알려지기 쉽지 않다. 우리가 강주룡이 되어 옵티칼노동자들의 투쟁을 알리자.

1차 오픈마이크 당시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 중인 세종호텔농성장에서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들을 나눴던 것처럼, 2차 오픈마이크도 투쟁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여성파업에 대한 기대, 성차별을 겪으며 더욱 다져지는 사회변화에 대한 욕구 등의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우리의 힘을 키루고 서로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갈 것이다.

옵티칼로 3.8여성파업조직위가 내려간다는 결정에 대해 연대자들의 생각을 물었다. 옵티칼 투쟁 초기부터 현장에 자주 머무르며 깊게 연대하고 있는 이훈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처음엔 의아하긴 했죠. 여성파업과 옵티칼투쟁을 연결짓는 게 노동운동판에서는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미국에서 트랜스젠더 차별이 있자 파업을 벌였던 사건을 떠올려봤어요."

2021년 넷플릭스 직원들은 트랜스젠더 혐오표현이 있는 자사 프로그램 방영에 항의하며 파업과 시위를 벌였다. 또한 2023년 성소수자권리의 달인 6월에 미국의 다수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비롯해 성소수자 인권 관련 장식품 설치가 불허됐다는 소식이 있자, 스타벅스노조에서 성소수자인권과 임금·복지를 내걸고 파업을 한 적이 있다.

이훈 활동가의 말처럼 비슷한 처지에 있거나 동일한 요구가 있어야만 연대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투쟁에, 부당한 현실에 정의롭게 저항하는 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저항하고 연대하며 우리는 해방의 날이,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이 좀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믿기에 함께 하는 것이다.

부당함에 맞서 우리보다 하늘 가까이에서 싸우는 옵티칼 여성노동자 옆에 서자. 그녀들 곁에 서고 싶은 사람들은 2월 3일 구미로 오시기 바란다. 함께 서로의 삶과 투쟁의 이야기를 나누자. 그리고 2월 16일로 예고된 철거일에도 힘을 모으자.

※ [참가신청해주세요]옵티칼 고공농성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외치다!

-찾아가는 오픈마이크,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2/3)
서울 버스 출발 : 2024년 2월 3일(토) 오전 9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 참가신청 : 2월 1일(목) 19시까지
🌿 참가비 : 3만원 (대절 버스 참가시)
🌷 후원 및 참가비 입금 계좌 : 카카오뱅크 3333-26-1289503 정은희(빵과장미)
*참가신청 링크 :https://forms.gle/UKxzSVDJJN7J4ofj6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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