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규 칼럼] 이재명식 민주당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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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대표의 회견이나 연설은 대서특필까지는 아니어도 긍정적 기조로 전달하는 게 언론계 오랜 관례다.
그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년회견에선 이런 묵계가 깨진 것 같다.
이처럼 이 대표에게 쓴소리하는 이들은 언론, 여당만이 아니다.
그런 사이 공천 룰은 '이재명 일병 구하기'라도 공교롭게 이 대표만 피해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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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대 논란은 여권 프레임 아류로 흘러
자기희생 없이 득실만 봐선 신뢰 못 얻어
여야 대표의 회견이나 연설은 대서특필까지는 아니어도 긍정적 기조로 전달하는 게 언론계 오랜 관례다. 논의와 퇴고를 거듭했을 대국민 메시지인 점에서 비중 있는 보도는 가치도 충분했다. 그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년회견에선 이런 묵계가 깨진 것 같다. 대통령이 굳이 피한 신년회견을 자청한 것도 호의를 가질 법한 일인데 그 반대였다. 언론이 듣고 싶은 말과, 이 대표가 하고 싶은 말이 달랐던 이유가 커 보인다. 이처럼 이 대표에게 쓴소리하는 이들은 언론, 여당만이 아니다. 진짜 위기는 민주당 중진, 원로들까지 거침없이 신랄하게 목청을 높이는 데 있다. 당내 혼란도 정리하지 못하고 정권과의 싸움 운운하는 것이 공허한 이유일 것이다.
당내의 혼란은 전술 변화 없이 같은 선수로만 답답한 경기를 하는 요즘 한국축구를 보는 것 같다. 이 대표는 어떤 선거 때와 비교해도 갈등이나 균열 정도는 크지 않다고 했다. 막 시작된 공천만 봐도 사실과 거리가 있는 말이다. '개딸공천’ ‘김00공천’이 설왕설래하고 패권공천 논란은 봉합되지 않고 있다. 일부 86세대 퇴출 논란의 경우 친명 비명이 ‘한동훈 프레임’으로 싸우는, 여권의 아류로 흘러 이상하다. 가슴 뛰는 가치로 86세대를 추월하는 것도 아니어서 허망한 권력 싸움으로 비친다. 그런 사이 공천 룰은 ‘이재명 일병 구하기’라도 공교롭게 이 대표만 피해서 바뀌었다.
공천은 우리 정치에서 불가사의한 영역이긴 하다. 민주화 이후에도 권력 핵심에서 가장 내밀하게 이뤄지는 게 공천이다. 3김 시절의 1인 지배 정당을 위한 형식적 공천에선 탈피했어도 계파공천, 밀실공천의 사천(私薦)은 여전하다. 그런 정치 퇴행이 극명했던 게 2016년 보수여당의 공천인데 이후 대통령 탄핵, 지금의 보수위기마저 저기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은 당시 시스템 공천을 통해 친노의 손발을 자르고 인재를 등용해 원내 1당의 깜짝 승리를 거두었다. 도덕성과 전문성, 능력을 앞세워 다음 총선마저 승리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 보인다. 공천 시스템이 무너지는 소리가 야당에서 커져 있다.
이 대표는 피습 보름 만에 당무에 복귀하면서 공정하고 혁신적인 공천을 다짐했는데, 결국 돌아가는 사정은 이재명식 공정과 혁신일 따름이다. ‘이재명식’은 선거를 두 달여 앞둔 지금껏 선거제 비례의 가닥도 잡지 않고 있는 데도 있다. 연동형 선거제의 대국민 약속을 한두 번 한 것도 아닌데도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침묵만 하고 있다. 당내 비판대로 비례대표 몇 석 더 얻으려다 253개 지역구에서 손해 보는 소탐대실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냉정하게 돌아볼 문제는 이 대표의 선거 뒤 사법리스크다. 여러 사건 중 위증교사 재판은 특히 오래 끌 사안이 되지 않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어떤 경우를 감안하든 선거 승리가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그들만의 리그로 이길 수 없다. 당내 인사들은 지금 민주당 위기는 민주주의 위기라고 한다. 생전 DJ는 당에 전권을 휘둘렀어도 민주주의 위기란 말을 듣지 않았다. 당장 현 정부를 심판한다 해도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그 대안으로 보지 않는다. 정권심판의 힘은 자기 혁신과 희생, 그리고 당내 통합에서 시작되지만 이재명식 민주당에서 자기희생은 희미하다. 지금처럼 득실과 유불리만 따져선 대안이란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이대로라면 겉으론 정권의 독단과 무능을 탓한다 해도 실제로는 정권에 오히려 독단의 길을 열어주는 무책임일 수밖에 없다.
이태규 논설위원실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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