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노조票 눈치보기에···기업인 "총선서 심판할 것" 분노
극적타결 기대감 컸지만 또 무산
"중기·소상공인 예비범법자 전락"
與도 "서민들 벼랑 내몰아" 격앙
노동계는 "근로자 안전 우선, 환영"
중대재해처벌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시행 유예를 위한 법 개정이 불발되면서 정부와 정치계는 물론 중소기업계에서도 강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나흘 만에 첫 사망 사고가 나오면서 중소기업계의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1일 정치권과 중소기업계는 이날 열린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법안이 통과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지만 결국 좌절되면서 큰 혼란에 빠졌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이 법안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면서 법안 통과에 대한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민주당의 거부 방침 발표 전까지만 해도 극적 타결의 가능성이 무르익는 듯한 분위기였다. 국민의힘·정부가 ‘산업안정보건지원청’을 설립하겠다고 입장을 전격 선회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중대재해처벌법 유예의 선결 요건으로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강력하게 요구해왔는데 국민의힘이 이를 수용해 단속·조사 업무를 덜어낸 형태의 산업안전보건지원청을 설치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것이다. 여당의 절충안 제안 소식이 알려진 뒤 민주당 원내지도부에서도 “합의 가능성이 있다”는 긍정적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4·10 총선을 앞두고 극심해진 노동계의 눈치 보기에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구성원들의 추인을 얻는 데 실패했다. 윤영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중재안을 관철시키지 못한 배경에 대해 “민주당 의원 상당수가 거기(중재안)에 부정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향후 스스로 요구한 협상안을 걷어차는 모습을 연출하고 내부 반발까지 야기한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
협상 불발에 국민의힘은 본회의 직후 국회 본관에서 규탄 대회를 열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이념과 특정 세력 눈치 보기로 민생을 내던졌다”며 “민주당의 1순위는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기득권 양대 노총”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그는 “입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다”며 “정부와 함께 행정 조치를 통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향후 협상 가능성에 대해 윤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협상에 임할 생각이 없다고 판단이 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입장 변화가 있어 협상을 제안해온다면 언제든 협상에 임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이 시행된 가운데 다음 국회 본회의는 이달 29일에야 열린다.
기대감에 부풀었던 중소기업계도 분노가 폭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중소기업계는 성명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무산돼 매우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민생 현안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줄곧 요청했지만 이날 법안 처리가 무산되면서 83만이 넘는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예비 범법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이어 “복합 경제위기로 산업 현장에서 느끼는 중소기업들의 체감 경기가 급속하게 얼어붙고 있는 와중에 형사처벌에 따른 폐업의 공포를 더하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라며 “남은 2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이 다시 논의돼 처리되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총선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고압가스 충전 업체를 운영하는 A 씨는 “앞으로 누가 불안에 떨면서 사업을 하겠냐”며 “기업 현장은 전혀 모르면서 포퓰리즘에만 빠진 정치인들을 보니 우리도 곧 남미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중소기업계에서는 결국 이번 총선에서 국회의원을 제대로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투표를 통해 심판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정책 취지와 달리 폐업과 채용 인원 축소에 따른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대부분의 중기·영세 기업들이 산업 안전 준비 부족을 호소하는 가운데 원칙적인 법 적용에 부담이 커져 채용 시 건강검진을 강화하고 채용 부담에 근로시간을 단축, 일자리를 감축하는 등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예방보다는 처벌을 중시하고 있는데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안전관리자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업종에 맞는 매뉴얼 하나 없는 상황에 유예 없이 5~49인 사업장에 관련 법을 적용하는 것은 정치권의 무책임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고 법 적용 나흘 만에 첫 사망 사고가 난 것처럼 제2, 제3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기업이 빠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전면 확대 시행되는 것에 대해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며 적극 환영하고 나섰다.
이날 민주노총은 “이미 긴 시간 50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법의 개악을 시도하며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했지만 이제야 비로소 더 많은 노동자들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현재 7만 1000곳에서 90만여 곳으로 12배나 증가해 정부로서도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단순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기업 수 기준으로도 12배 이상 수사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되면서 ‘수사 대란’으로 중대재해 예방 기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또 업계에서는 민주당이 제시했던 산업안전보건청 설치가 무산되면서 고용노동부가 앞으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이행에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했다. 해당 로드맵은 장기적으로 재해 예방 실효성을 높이고 현장의 어려움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안착시키기 위해 고용부가 지난해 마련한 방안으로 자기 규율 예방 체계 확립과 중대재해 취약 분야 집중·관리, 업계 참여·협력을 통한 안전 의식·문화 확산, 산업 안전 거버넌스 재정비 등을 골자로 한다.
노현섭 기자 hit8129@sedaily.com성채윤 기자 chae@sedaily.com이승배 기자 ba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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