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공부해서 만든 책, 공부시켜 주는 책
오늘은 10년 전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2013년에 '객석'을 맡고나서, 저는 친한 선후배 및 동기들에게 개업 인사도 드릴 겸 '객석 후원회'라는 걸 조직했지요. 아시다시피 저는 음대 출신이 아니지만, 제가 아는 지인들 역시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클래식 음악과 예술에 생소한 친구들이었습니다.
다들 격려 반, 우려 반으로 덕담을 해주고 있는데, 한 후배가 뜬금없이 "형님, 바이올린이 몇 줄인지는 아세요?"라고 물어왔습니다. 제가 머뭇거리고 답을 못하자 "공부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갔지요. 그래서 즉시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기자들에게 확인 차 물어보니 다들 한심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더군요.
그리고 한 달 뒤, 다시 모임을 가졌습니다. 후배가 "이제는 아셨어요?"라고 물어오길래 자신있게 설명했더니 "그러면 피아노 건반은 몇 개인 줄 아세요?"라고 또 묻더군요. 이건 아예 답이 떠오르지도 않아 가만히 있었더니, 이어 하는 말이 "계속 열심히 공부하세요"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땐 제가 참 한심했지요. 피아노 건반 개수도 모르면서 무슨 공연예술잡지를 운영한다는 생각이었는지. 당시 '객석'에 후원금을 가장 많이 기부했던 그 후배의 따끔한 충고는 지금도 저를 공부하게 만듭니다.
그 얼마 후 저는 처음으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악기를 아무리 열심히 쳐다보아도 클라리넷과 오보에는 비슷하게 생겨서 멀리선 영 구별을 못하겠고, 비올라 파트가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못 찾겠는 겁니다. 첼로와 더블베이스는 덩치가 크니 금방 눈에 띄었고, 플루트는 가로 형태여서 알겠고, 금관악기는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 친구들이 불었던 것을 보아서 나름 구별할 줄 알았는데 말이죠. 비올라가 바이올린보다는 더 큰 악기로 알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니 제 눈에는 다 비슷비슷해 보인 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편집회의 때 기자들에게 부탁했죠. 나 같은 찐 초보자를 위해 오케스트라의 배치도를 한번 소개하면 어떻겠느냐고요. 역시나 저를 측은하게 보던 기자들은 마지못해 동의하여,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오케스트라 배치도가 자세한 설명과 함께 나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악기 시리즈' 연재도 만들었습니다.
물론 음악가들에게는 기본 상식에 불과한 것이지만, 같은 계통의 악기라도 종류가 여럿 있는만큼,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하는 분들껜 많은 도움이 되었고, 후에 다른 음악 간행물들도 비슷한 시리즈를 만든 걸 보았습니다.
그 뒤로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어떤 모임에서 음악가들을 만났는데, 어느 지휘자가 '객석'의 덕을 크게 보았다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제 손을 덥석 잡는 것이었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그는 한 지역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습니다. 그런데 악단을 창단한 기관장이 일단 30~40명의 단원으로 시작하라고 지시를 했었다는군요.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화음을 제대로 내려면 단원이 최소 60~70명은 되어야 한다고 건의했다지요. 처음에는 씨알도 안 먹혔는데, 어느 날 대표가 호출해서 사무실로 갔더니 '객석'에 나온 오케스트라 배치도를 가리키며 30명의 단원을 더 뽑으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 기본 정원을 맞춘 오케스트라로 새출발하게 되었다며, '객석'의 위력을 한껏 칭찬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여전히 음악회에 초대를 받으면 항상 곡목을 미리 살펴보고 공부합니다. 왜냐하면 공연 후 오늘의 연주가 어땠냐고 물어오는 음악가들한테 최소한의 답변은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들 '객석'을 운영하니까 제가 클래식 음악에 도가 통한 줄 알아서 더 그렇습니다.
이번 호부터 '객석'은 새로운 칼럼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클래식 초심자는 물론 동호인들을 위해 대가들이 자신이 처음 만났던 클래식 음악과 일상에서 자주 듣는 곡,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의 곡 등을 소개하고, 그 안에 담긴 특별한 사연과 추억을 나누는 칼럼입니다. 기본적으로 3곡 정도를 선정해 작곡가와 작품을 소개하는데, QR코드를 통한 유튜브 영상으로도 음악이 공유되기 때문에 클래식 입문자들에겐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객석'을 맡은 지는 이제 10년이 지났지만, 1984년 3월에 창간호를 내놓은 '객석'은 곧 40주년을 맞이합니다. 저를 비롯한 직원들은 '객석'이 언제나 공부하고 연구하는 잡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동시에 클래식 음악에 눈 뜨는 이들을 공부시키는 잡지가 되도록 더욱 노력할 생각입니다. 참고로 바이올린의 현은 4개, 피아노의 건반은 88개(검은 건반 36개, 흰 건반 52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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