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한국의 `김치`와 중국의 `라바이차이`

2024. 2. 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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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농심이 미국에서 판매하는 라면 포장에 사용했던 중국어 표기로 홍역을 치렀다. 우리의 자존심인 김치를 중국 동북지방의 배추절임인 '라바이차이'(辣白菜, 랄백채)라고 표기한 것이 문제였다. 중국이 김치가 자신들의 파오차이(泡菜)에서 유래되었다고 우기던 3년 전 '김치 동북공정'을 기억하는 소비자에게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문제 제기에 놀란 농심이 결국 중국어 표기를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도 김치를 'kimchi'로 쓰고, '김치'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일본에서는 우리의 김치를 'キムチ'라고 쓰고, '기무치'라고 읽는다. 심지어 일본에서 생산한 김치에는 'kimuchi'라고 표기한다. 우리 말이나 음식을 무시하거나, 김치를 일본 음식이라고 우기겠다는 나쁜 의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일본 사람은 '김치'를 우리 식으로 발음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중국의 사정은 더욱 난처하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김치'의 뜻과 소리를 고스란히 표현하는 중국어 표기 방법이 없다. 중국이 낯선 외국어 발음을 표기하는 일본의 가타카나와 같은 문자를 따로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중국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음식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김치를 '한스파오차이'(韓式泡菜)·'한궈파오차이'(韓國泡菜)·'라바이차이'(辣白菜) 등으로 부른다.

파오차이와 라바이차이가 우리의 김치와 똑같은 음식이 아니라는 지적은 의미가 없다. 중국이 김치에만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은 독일의 사워크라우트(Sauerkraut)와 뷔르스트(Wurst)를 '독일식 파오차이'와 '독일식 샹창'(香腸)이라고 부른다. 중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일본은 우리의 찌개를 '나베'(なべ·鍋)라고 한다.

우리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베트남의 퍼(Pho)를 '쌀국수'라고 부르고, 독일의 뷔르스트를 '독일식 소시지'라고 부른다. 일본의 라멘(ラメン, ramen)은 아예 '라면'(ramyon)으로 바꿔버렸다. '오뎅'(おでん)과 '다꾸앙'(たくあん)도 '어묵'과 '단무지'가 돼버렸다.

김치의 중국어로 알려지라는 '신치'(辛奇)는 실제로 중국에서 만든 중국어가 아니다. 우리 농림축산식품부가 2013년에 만들어낸 엉터리 짝퉁이다. 우리말의 '기·김'을 발음하지 못하는 중국인들에게 '맵고 신기한 음식'이라는 뜻이 담긴 '신치'가 최선의 대안이라는 것이 당시 농식품부의 어쭙잖고 황당한 주장이었다. 문체부가 그런 '신치'를 2021년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이라는 훈령에 포함해버린 것은 훨씬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중국이 우리 문체부의 훈령을 인정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김치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김치는 단순한 채소절임이 아니다. 농산물인 채소와 수산물인 젓갈이 어우러진 독특한 절임 음식이다. 김치 이외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다. 저온에서 유산균으로 발효시킨다는 사실도 유별나다. 숙성의 정도에 따라 김치의 맛이 깊어진다. 저장 방법도 특이하다. '김치냉장고'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가전제품이다. '김장'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자랑거리다.

사실 우리 음식을 다른 나라에 어떻게 소개할 것인지는 절대 간단치 않은 문제다. 2010년에 발족한 한식재단이 고심 끝에 내놓은 제안은 무용지물이다. 초보적인 영어 번역으로는 다른 나라의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한식재단이 'dried seaweed roll'이라고 장황하게 정해놓은 김밥이 미국에서 'Gimbap'으로 통용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역부족이기는 마찬가지다. 한식재단에서 'Korean sausage'라고 제안한 순대를 문체부는 'sundae'로 쓰라고 한다. 그런데 영어사전에서 'sundae'는 아이스크림의 일종이고, '선디' 또는 '선데이'라고 읽는다. 우리 말을 모르는 사람이 'seonji'라는 문체부의 제안을 '선지'라고 읽을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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